환승 Coimbra-B
존재는 존재하게 된 이상 그냥 살아가면 될 일이거늘, 왜 자기 존재를 애써 증명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존재에 이유 따위를 따져 묻기 시작한다면 여하한 이유로도 존재를 팰 수 있다. 왜 이런 식으로 존재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에 한사코, 똑똑히, 어김없이 답이 준비되어 있다면 살 이유조차 없는 것이다.
적어도 두드려 맞기 위해 태어나지 않음은 기억해두어야 한다.
평을 시도하려면 그것을 행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도마나 저울 위에 올릴 수밖에 없다. 이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무게를 잴 때, 그릇의 무게를 고려하여 영점 조정한 후에 측량 코저 하는 물체를 올리듯, 누구나 무언가를 논하려 하는 즉시 자기 그릇부터를 드러내게 된다. 불가피하게.
충분치 않다
자족적인 글쓰기나 양보적인 말하기에 익숙할 때, ~~으로 충분하다 투로 끝맺음을 한다. 뒤로는 웨딩드레스와 그 부속인 너울처럼 긴 자락의 여운을 늘어뜨리면서도.
자족적이거나 양보적인 모드가 타협의 형태로 자주 채택되곤 한다.
연결은 항구적인 욕망인 동시에, 언제 어디서 풀려 전체가 와해될지 모를 니트 조직처럼 불안하다. 인간은 실로 짜여있지 않고 구성성분의 상당량이 액체다..... 그래도 역시 그 표피는 미세한 실처럼 보이는 조직인가? 피도 핏줄의 형상을 가지기도 하고....
실을 끊듯이 이 표피를 자르는걸 흔히 '긋는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자족적인 오뚜기라 절대 긋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외부로부터의 어떤 힘이 악랄하고도 집요하게 내 자족성에 균열을 가하여, 이 오뚜기를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방식으로 때려눕혀 납작하게 만들려 기를 쓸 것이다. 세상이 나 따위에 무슨 관심이 대단해서 그런 만행을 벌일까마는, 무릇 사악한 힘들이란 미약한 자들일수록 만만하게 먹어치우는 편이라, 눈에 안 띄고 미미한 곳까지 찾아가는 서비스에 특화되어 있다.
내 일을 내 일 아닌 척 비웃는 힘은 나를 살아는 있게 해 주었다.
짐 싸서 옮겨야 하는 지금 이 글을 제한된 시간에 마치기엔 충분치 않지만, 한 마디 정도를 보태기엔 충분하다.
어제 기차역에서 읽은 책엔 악업에 따라 물건으로도 환생한다고 적혀 있었다. 악업에 의한 물건들에게는 이미 부여된 미덕이 있다. 그들은 살아있는 입으로는 맹세할 수 없는 상태다. 모두에게 담보된 거짓의 쉬운 계기가 그들에게는 이미 차단되어 있다. 부서지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맹세를, 그들은, 자기 몸의 물질성이 와해되는 순간까지 온몸을 닳아가며 존재 자체로 수행할 운명이다.
포르투갈의 가옥은 물살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