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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씨 Dec 08. 2021

헨리의 서평 : 헤이트


#헤이트 #Hate #왜혐오의역사는반복될까


부제는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입니다.


혹시 지금 누굴 혐오하고 계신가요?

혐오는 단순히 ‘좋아하지 않는다’의 정도를 훨씬 넘어서는 감정이기에 ‘나는 지금껏 혐오의 감정을 가진 적 없어’ 하고 당당히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혐오의 의미에는 폭력성이 내포되어 있는 듯해서 나는 누군가 혐오하지 않아 할 수 있습니다만 혐오의 좀 더 좁은 의미의 다른 단어로 표현한다면 ‘차별’이 될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차별’의 마음을 가진 적 없는지?

우리 동네에 아랍 난민들이 단체로 자리를 잡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할까요? 그들을 우리와 다른 분류로 차별하는 마음은 없을까요?

내가 사는 아파트 옆 단지에 임대 주택이 들어선다고 합니다. 집 값 떨어지는 것도 걱정이고 임대 주택에 사는 그들은 교양도 없고 생활 수준도 떨어질 것이고 그 집의 아이들과 우리집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도 못 마땅하다고 느낀 적은 없을까요? 경제 수준으로 나와 사람을 구분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없을까요?


우리는 앞서 말한 혐오와 차별에 그리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럼 왜 우리는 이런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책의 내용을 따라가 봅시다.


이 책에서는 혐오의 발생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째는 집단 의존성이 강해지면 부작용으로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가 속한 집단의 생존을 위협하는 타 집단에 대해 극단적인 미움의 감정을 갖게 되죠.


둘 째는 공감의 부족입니다. 우리는 나와 역사적, 문화적, 시대적 맥락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공감의 부재는 내가 속한 집단과 타인의 집단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혐오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는 당연히 공감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내가 속한 집단의 생존이 타인의 집단으로 인해 위협받을 때 혐오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김민정 교수님은 최근 인터넷이 혐오의 온상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정보의 확산 속도가 빠릅니다.

그리고 수많은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정보만 반복 습득하는 알고리즘으로 자신의 편견은 오히려 점차 심화되어 간다고 합니다.


역사적인 혐오의 사건을 예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 이슬람포비아, 아프리카인종차별, 로마시대의 기독교 박해, 십자군 전쟁, 반공주의 사상 등…

역사적 지식도 배울 수 있고 우리가 바로잡아야 할 그릇된 역사관도 이 책을 통해 알아갔으면 합니다.


이 책은 티앤씨재단에서 ‘혐오’란 주제로 국내 최고의 석학 아홉 분의 강연과 토론을 지면으로 옮긴 것입니다.

1장은 혐오의 기원과 정의 그리고 그 이해를 담았습니다.

2장은 우리의 역사를 통해 혐오의 사례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3장은 토론과 토크 콘서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2장에서 언급된 역사의 사례로 보는 혐오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3장의 토론은 별도로 표기되어 있는 QR 코드를 통해서 실제 토론의 현장을 유튜브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지면 외에 동영상으로 보고 들으면 좀 더 이해가 잘 되는 듯해서 추천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속적으로 얻고자 한 답은 ‘어떻게 해야 혐오를 없앨 수 있을까’ 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혐오의 감정을 그리고 차별의 감정을 버릴 수 있을까 하는 행동강령에 대한 갈구로 읽었습니다.

명쾌한 답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 다소 철학적인 접근의 결론이어서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만 다시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합니다.



혐오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까 고민해 봅니다.

교육에 의해 부분적으로는 가능하리라 우선 생각됩니다.

예로, 미국, 유럽의 백인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리 차별의 감정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경의 감정마저 있습니다. 다만 자살테러 단체를 연상하는 무슬림 또는 할렘가의 마약과 폭력을 연상하는 흑인에 대해 차별의 감정을 가지는 이유는 지금껏 받아온 교육과 우리 사회가 공유해온 메시지의 영향이 크다 생각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로 인한 우리의 지엽적인 인식은 바꿀 수 있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혐오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이상적인 기대임을 또한 인정해야 됩니다. 최근 백년~이백년 동안의 정치, 경제, 사회,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기원전 3000년 인류문명의 시작과 함께 현재에 이르기까지 반만년 역사 속에 그 기울기는 로그함수처럼 점차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는 생존, 번식과 관련된 본능은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그리 큰 변화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서은국 작가의 ‘행복의 기원’을 잠깐 인용하겠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생존’과 ‘번식’의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할 때의 부산물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가지는 기본적인 본능입니다. 자신의 생존을 침해하는 집단에 대한 혐오는 어찌보면 당연한 감정이기에 이에 대한 박멸은 불가능하다 생각됩니다. 다만 그 감정의 표출에 대한 포용적인 방법과 제어할 수단은 이성적인 인간이기에 강구해야 할 숙제일 것입니다.  


이 책은 협찬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M.blog.naver.com/lovice91

@henry_fun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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