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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씨 Dec 06. 2021

헨리의 서평 :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박완서 에세이, 추천글, 모음집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 #박완서


이 시대의 작가 박완서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두 말할 필요 없는 국민 작가입니다만 간략하게 약력을 소개하겠습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 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에 문단에 데뷔하게 됩니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하기 전까지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을 포함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소학교를 입학하기 전 홀어머니, 오빠와 함께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지만 6.25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며 1953년 결혼하여 1남 4녀를 두었습니다.


이 책은 작가님 타계 후 생전에 쓰신 660여편의 에세이 중에서 추린 글들의 모음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 고 누가 묻는다면 ‘박완서입니다’ 라고 자신있게 대답합니다만 그 대답의 명쾌함 이전에 기실 읽은 그녀의 글은 몇 편 되지 않기에 부끄러움 또한 같이 갖고 있습니다.


많은 글 중 무엇을 볼까 하는 나의 고민을 들어주듯 에세이 모음집이 출판되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찾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글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글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를 반영하곤 합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훔치는 공감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쁜 우리 말들이 나오는 게 좋습니다. 거북한 외래어나 신조어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 말들을 되새기다 보면 단어가 주는 따뜻한 힘에 빠져 헤어나오기 힘듦니다.


박완서 작가의 글은 한 번만 읽고 덮기에는 아깝습니다.

안 읽은 분은 계시겠지만 한 번만 읽은 분은 없지 싶습니다.


책 속의 에세이 중 ‘보통 사람’ 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내 집 아이를 나보다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딱 보통 사람에게 짝을 맞춰주고 싶은 평범한 소망입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 이라는 조건만큼 까다로운 건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아이의 참척을 보는 어미의 아픔이 글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그 아픔을 감히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집 아이 책장을 헤맵니다.

작가님이 쓴 동화책 몇 권을 건져냅니다. 묻혀있던 금은보화를 발견한 느낌입니다.


어설픈 서평으로 그 분의 글을 평하고 싶지는 않아 그만 둘까 합니다.




아래 그 분의 글 몇 군데를 옮겨 봅니다.

혼자 간직하기에 아까운 이 느낌을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유쾌한 오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는 착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고, 그런 날은 살맛이 난다.


[사십 대의 비 오는 날]

나이를 먹고 세상인심 따라 영악하게 살다 보니 이런 소박한 인간성은 말짱하게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문득 생각하니 잃어버린 청춘보다 더 아깝고 서글프다. 자신이 무참하게 헐벗은 것처럼 느껴진다.


[보통 사람]

모르겠다. 지금 누가 나에게 보통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마에 뿔만 안 달리면 보통 사람이라고 대답하겠다.


[언덕방은 내 방]

집은 편안한 만큼 헌 옷처럼 시들하기가 십상인데 그 헌 옷을 새 옷으로 만드는 데는 여행이 그만이다.


[생각을 바꾸니]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민들레꽃을 선물 받은 날]

내가 불태운 것만큼의 정열, 내가 잠 못 이룬 밤만큼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갚아지길 바란 이성과의 사랑


[달구경]

달보다 휘황한 게 너무 많은 밤이었다


[내 식의 귀향]

이 세상에 섬길 어른이 없어졌다는 건 이승에서 가장 처량해진 나이이다.


[내 식의 귀향]

정 회장은 정 회장답게 고향에 갔지만 나는 내 식으로 고향에 가고 싶다. 완행열차를 타고 개성역에 내리고 싶다. 나 홀로 고개를 넘고, 넓은 벌을 쉬엄쉬엄 걷다가 운수 좋으면 지나가는 달구지라도 얻어 타고 싶다.

아무의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계절은 어느 계절이어도 상관없지만 일몰 무렵이었으면 참 좋겠다.


[그때가 가을이었으면]

남편을 사랑하고 싶다.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 오는 사람으로서도 아니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도 아니고, 그냥 남자로서 사랑하고 싶다. 태초의 남녀 같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




책 속에 나오는 따뜻한 단어를 옮겨 봅니다.

#박완서소설어사전  이란 책도 출판되어 있네요.


[ 책 속의 소설어 ]


. 감우 : 때를 잘 맞추어 알맞게 내리는 비

. 구메구메 : 남모르게 틈틈이

. 도탑다 : 서로의 관계에 사랑이나 인정이 많고 깊다

. 뒤채다 : 뒤치다의 방언, 엎어진 것을 젖혀 놓거나 자빠진 것을 엎어 놓다

. 미구 : 얼마 오래지 아니함

. 참척 : 자식이 부모, 조부모보다 먼저 죽다

. 반추 :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함

. 봉제사 : 봉사,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심

. 휘황하다 : 광채가 나서 눈부시게 번쩍이다

. 우두망찰 : 정신이 얼떨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

. 봉창 : 창틀이나 창살이 없이 토벽에 구멍을 뚫어 채광하는 창

. 선영 : 조상의 무덤 또는 그 근처의 땅

. 선종 : 임종시 성사를 받아서 죄가 거의 없는 상태로 죽는다는 가톨릭 언어

. 골마지 : 물기가 많은 음식 표면에 생기는 곰팡이와 비슷한 물질

. 연전 : 몇해 전

. 쇠진 : 점점 쇠퇴하여 바닥이 남 




박완서와 연배가 비슷한 아버지가 너무나 생각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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