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떻게 희생으로 변질되는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인간을 개인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속한 사회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했고 유기체가 욕망과 돈, 계급과 명예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끈질기게 기록했다.
인간 희극이라는 거대한 기획은
도덕을 설교하기보다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고리오 영감>은 그런 구조가
가장 잔인하게 응축된 작품이다.
고리오 영감은 파리의 허름한 하숙집에 산다.
한때는 제면업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재산은 거의 모두 사라졌다.
사라진 이유는 단 하나
두 딸을 향한 끝없는 사랑 때문이다.
딸들은 상류사회로 진입했고
그 진입의 비용은 아버지의 전부였다.
고리오는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랑으로
스스로를 비워간다.
한편 젊은 라스티냐크는
이 하숙집에서
야망과 계급 상승의 길을 배운다.
고리오의 몰락과 라스티냐크의 상승은
같은 도시가 만들어낸
서로 다른 결과다.
<고리오 영감>의 비극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경계가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고리오는 사랑을 주었지만
사랑을 조건 없이 소모했다.
결과 딸들은
사랑을 책임이 아닌 권리로 받아들인다.
발자크는 말한다.
사랑이 윤리를 잃을 때
그 사랑은 타인을 성장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타인을 타락시킨다.
이 소설에서
가장 잔인한 인물은 딸들이 아니라
사랑을 멈추지 못한 아버지 자신이다.
희생은 고귀하지만
무조건적일 때 위험해진다.
고리오의 희생은
사랑의 증명이 아니라
자기 소멸의 방식이 된다.
그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하고
희생 때문에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
윤리는 무한한 베풂을 요구하지 않는다.
책임 있는 사랑은
상대에게 응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고리오의 사랑에는
그런 요구가 결여되어 있다.
고리오는
자기 가치를
타인의 인정에 의존한다.
의존은
사랑을 교환이 아닌
일방적 헌납으로 바꾼다.
발자크의 파리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자본과 지위의 교환으로 작동한다.
고리오는 그런 규칙을 거부하지만
거부는 보호가 아니라
자기 파괴로 귀결된다.
<고리오 영감>은
사랑이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행위가 될 때 그런 사랑이 어떻게 존엄을 잃고
희생이라는 이름의 비극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주는 근대 도시의 가장 냉혹한 초상이다.
Hen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