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 그러니까 한 열흘 전쯤에 북악산에서 트레일 러닝을 했다. 말이 트레일 러닝이지, 등산을 했고, 살짝살짝 평지 구간에서 뛴 정도다. 북악산 코스가 그리 험한 코스도 아니고 긴 코스도 아니었고 고작 5km 정도 1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트레일 러닝을 했다.
그게 사단이었는지 그다음 날부터 몹시 심한 감기에 걸렸다. 열이 38.5도까지 올라서 하루 종일 약 먹고 집에 누워 있었다. 온몸도 으슬으슬 떨리는 게 독감 같았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독감 검사를 했는데, 독감은 아니었고 무언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고 하며 약을 주셨다. 그 후로 심한 열은 나지 않았지만, 며칠 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컨디션이 좀 나아지는 듯하다가, 오후가 되면 조금씩 으슬으슬 떨리고, 저녁이 되면 눈도 아프고 코도 아프고 입안도 얼얼해지는 게 부비동염처럼 아팠다.
너무 아픈 며칠 동안은 진짜 러닝 생각이 하나도 안 났다.
<아, 너무 아프니까 러닝 생각이 하나도 안 나는구나>
러닝 시작하고 이렇게 아파본 게 처음인가 싶을 정도로 아팠고, 진짜 아프니까 러닝 생각도 안 나고,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수십 수백 가지 고민을 안고 살아가다가, 몸이 병들면 모든 걱정은 없어지고 오직 건강 문제만 생각하게 된다는 그런 말이 떠올랐다. 정말 그렇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것이며 건강보다 중요한 건 이 세상에 없다.
아직 아픈 게 다 나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열이 떨어지고 움직일만하니, 제일 먼저 생각이 난 건 맥주다. 그렇다. 러닝 말고 맥주.. 약을 먹으니 맥주를 마실 수 없고 마시지 말라니 더 마시고 싶었다. 집에 제로 맥주가 한 캔 있길래 마시려다가 그만두었다. 살펴보니 논알코올 아니고 저알콜 맥주였기 때문이다.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맥주 중에는 알코올이 아예 안 들어간 논알코올도 있고, 살짝 들어간 저알콜도 있기 때문에 잘 구분에서 마셔야 한다. 특히 운전을 한다거나, 약을 먹고 있을 때 더욱 그렇다.
맥주 다음으로 생각난 게 바로 러닝.
11월이야 그렇다 치고, 12월 새로 마일리지를 쌓아야 하는데 러닝을 며칠째 못하고 있으니, 마음이 너무 불안해졌다. 게다가 첫눈이 내려서 눈 위에서 설중런 인증샷들이 SNS에 올라오는 걸 보니 나도 너무 뛰고 싶었다. 사실 눈이 온 다음 날이나 미끄럽지, 막상 눈이 온 당일에 눈은 미끄럽다기보다는 뽀드득뽀드득해서 뛰기에 나쁘지 않다. 물론 평소처럼 페이스를 올리지는 못하지만 눈구경하며 슬로 조깅하기에는 딱이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눈 온 날은 또 그렇게 춥지도 않다.
그렇게 러닝을 일주일을 쉬었고, 지난 토요일 드디어 다시 러닝을 했다. 일주일 만에 러닝은 4년 동안 러닝하면서 아마 가장 길게 쉰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4-5일은 쉬어봤어도 일주일 쉰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몸이 다 나은 건 아니라서, 가볍게 11km만 뛰었고 날이 따스한 토요일 낮이라 기분 좋게 뛸 수 있었다. 다만 코가 좀 많이 막혀서 코호흡보다 입호흡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오히려 뛰고 나니 몸이 더 가뿐해지는 것 같고, 아픈 것도 사라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역시 맥주도 마셨다. 약도 다 먹었고, 러닝도 했으니, 마시고 싶었던 맥주도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나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는 맛있었고, 러닝하고 마시니 더욱 꿀맛이었다. 물론 러닝 끝나고 바로 마신건 아니지만 말이다.
지난 토요일에 그렇게 러닝을 하고 어젯밤에 다시 러닝을 했다. 러닝을 하면서 추워봤자 1시간만 견디면 되는 추위이고, 산에서 뛰는 것보다 평지에서 뛰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러닝은 겨울 러닝대로의 성취감, 기쁨이 있다.
평소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뛰었는데 아프고 나니, 오히려 러닝 하는 일상이 소중하다.
소중한 일상, 있을 때 잘 지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