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초 JTBC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생애 세 번째 풀코스 완주이자,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대회였다. 11월 초의 오락가락하는 쌀쌀한 날씨와 세 번째지만 여전히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풀코스 대회에 대한 긴장감이 꽤 있었는데 무사히 부상 없이 잘 완주를 했고 이제는 마음이 후련하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훈련이 아닌 펀런으로 달리기를 즐기고 있다.
내가 마라톤 대회에 수십 번을 나가본 것은 아니지만, 대회에 몇 번 나가고 느낀 점들이 있어 몇 가지 적어 보고자 한다.
일단 작년에 처음 나갔던 풀코스 대회는 <공주백제마라톤 대회>였고 그다음 참가했던 대회는 <춘천마라톤 대회>였다. 두 대회 모두 중소 도시에서 열린 대회로 보통 스타트 라인 지점과 피니시 라인 지점을 제외하면 국도를 위주도 달리게 된다. 이 말은 즉, 응원하는 분들이 이 구간에 집중되어 있다는 말이다. 중간중간 마을이 나오거나 큰 교차로 등이 나오면 응원하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끊이지 않고 응원행렬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반면에 이번에 참가한 JTBC마라톤 대회는 도심에서 진행된 대회였기 때문에 분위기가 이전 참가 대회들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응원의 열기는 대단했고, 사람들의 응원 행렬도 거의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는데, 막상 경험하고 나니 큰 차이로 느껴졌다. 풀코스 마라톤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모르는 이들이 배번호에 붙은 내 이름을 부르며 파이팅을 외쳐주고 어느 꼬마 아이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리고 모르는 분들이 손에 쥐여주는 포도, 오렌지 등을 받아먹으며 완주를 했다. 날씨도 꽤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응원 나오신 분들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었다.
또한, 응원하는 사람이 끊이질 않다 보니,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 풀코스를 3시간 4시간 뛴다고 하면, 달리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지겹거나 지루하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응원하는 분들이 계속 있으니 지루할 틈이 없다. 뛰면서 경치구경도 하고 응원하는 사람 구경도 하고, 같이 뛰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말이다. 특히 재미있는 문구나 재미있는 코스튬을 입고 응원하는 사람들, 뛰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번엔 출발 그룹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큰 대회들은 사전에 이전 대회 기록증을 제출하라고 하며, 그 기록에 따라 출발 그룹을 분류를 한다. 대부분 기록이 빠른 사람들이 제일 앞 그룹에서 출발을 하고, 기록 미제출자가 가장 마지막 그룹에서 출발을 한다. 출발 간격은 대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3-5분 정도의 차이를 두고 출발을 한다. 이렇게 하면 병목 현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으로 추측이 된다.
내가 참가했던 <백제공주마라톤 대회>는 규모가 작은 대회라 이런 그룹 배정이 따로 없었다. 대회 자체는 큰 대회지만 부문이 10km, 하프, 35km, 풀코스 4가지로 되어 있어 각 부문별 참가자 수는 다른 풀코스 메이저 대회만큼 많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풀코스 메이저 대회는 10km 와 풀코스 두 가지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뒤죽박죽 섞여서 뛰어도 사람이 많지 않아서 병목현상은 크게 없었고, 뛰면 뛸수록 나와 페이스가 비슷한 사람들과 같이 저절로 그룹이 형성된다. 그래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페이스로 뛰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힘을 내기도 했다. 사실 풀코스 첫 경험이었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고 다른 러너의 뒷모습만 봐도 나처럼 여름 내내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연습하고, 풀코스에 처음 도전했을 것 같은 서사와 동지애, 인류애가 느껴졌다.
<춘천마라톤 대회>에서는 기록에 따라 그룹이 나뉘었고 나는 D그룹이었다. A그룹이 가장 빠른 그룹이고 D조는 4시간 이내 기록자와 기록 미제출자가 혼재되어 있었다. 이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뛰다 보니 자연스레 비슷한 페이스의 사람들과 그룹을 형성해서 뛰게 되었다. 25km, 30km를 지나면서 걷는 사람, 부상당한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고, 간혹 뒤에서 엄청 빠른 속도로 추월해서 가는 러너들도 있었다. 기록 미제출자라고 해서 모두 첫 참가자는 아니기 때문에 뒷 조에도 빠른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기록은 있지만 기록을 제출하지 않은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번 <JTBC 마라톤 대회>에서 나는 C그룹에 배정이 되었다. 기록 제출자 기준 3시간 30분-4시간 사이가 C그룹이 되었는데, 내 이전 기록은 3시간 52분이었으므로 나는 C그룹에서는 느린 편에 속했다. 그래서 속으로 오버페이스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을 많이 했다. 역시나 잘 뛰는 분들이 엄청 많았고, 뒷 그룹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앞으로 치고 나오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앞서 말했듯이 기록이 빠른 그룹이 먼저 출발하기 때문에 먼저 출발한 사람들은 자기 뒷 그룹에서 자기보다 느리게 뛰는 사람을 뛰면서 절대 마주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회에서는 뛰면서 걷는 사람이나 부상당한 사람, 꽤 느리게 뛰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앞 그룹에서도 그런 분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전 두 대회와 비교하면 현저히 적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렇게까지 없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잘 뛰는 사람들과 섞여서 뛰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같이 열심히 뛰게 되고, 걷는 사람이 없으니 나도 걷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마음을 다잡고 걷지 않고 뛰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두 대회에서는 물 마시면서 조금씩 걸었었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단 한 번도 걷지 않고 완주를 했다. 물 마실 때조차 걷지 않았다. 이래서 <뱀의 머리보다 용의 꼬리>가 낫다는 것인가.
잘 뛰는 사람들과 섞여서 뛰다 보니 이번에는 인류애 대신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 흔히들 하는 말로 달리기는 정직한 운동이라고, 뛰는 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데, 나를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니, 나보다 더 자주 뛰고 더 많이 뛰신 분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분들에게 여쭤본 것은 아니지만, 내 뇌피셜 <마일리지가 깡패>가 맞는 것 같다. 인터벌이나 이런저런 훈련, 보강 운동도 중요하지만, 결국 월 마일리지가 높은 사람, 꾸준히 뛴 사람이 더 잘 뛰고 더 좋은 기록이 나오는 것 같다.(이건 내 뇌피셜이니 오해는 금물)
지하철 10칸 중에 첫 번째 칸에 타고 가면 첫 번째 칸에 탄 사람들만 보이고, 네 번째 칸에 타면 네 번째 칸에 탄 사람만 보이게 마련이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차이는 생각도 안 해봤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A그룹에서 뛰면 뭐가 보이고 무슨 생각이 들까? 아마 나는 평생 느껴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