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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버헨리 Aug 01. 2024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의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다. 러닝을 좋아하면서 독서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문장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말이라 책을 읽지 않았어도, 러너가 아니어도 한 번쯤 들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가장 마지막 장에 쓰여있는 하루키 본인이 묘비에 적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뛰다가 중간에 걸으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문장에 대해 SNS 공간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쭉 걷기만 한건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셨다.  


<아, 그런가? 이게 그렇게 해석이 되나?>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의 달리기 책을 읽기는 했지만,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그가 러닝을 하다가 중간에 걸었던 적이 있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저 문장만 놓고 본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걷지 않았다라고 해도 맞는 말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걷기만 한건 아니다라는 말도 맞는 말이 될 수 있다.


사실 나도 달리다가 중간에 쉬거나, 셀프 중도 포기를 한 적은 있어도 걸은 적은 없는 것 같다. 달리다가 중간에 쉬는 경우는 내가 거리를 늘릴 때 거리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아니면 달리다가 야경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 멈추는 경우도 종종 있다. 셀프 중도 포기는 딱 한 번있었는데,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무렵, 무릎 통증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참고 페이스 줄이고라도 뛰는 편인데, 그날은 정말 계속 뛰다가는 영영 걷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뛰다가 갑자기 멈췄었다.


뛰다가 힘들면 걸으면 좀 어떤가? 뭐가 문제지?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중간에 걷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기록 욕심 때문이다. 러닝앱으로 뛴 거리와 페이스가 기록이 되는데 걸으면 평균 페이스가 떨어지고, 그게 뭐라고 나는 그걸 참을 수가 없다. 중간에 걸을 때는 잠깐 스톱시키는 방법도 있으나 앱을 켜서 스톱시키고 다시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하는 그 찰나도 나에게는 평균페이스를 깎아먹는 <아까운> 찰나이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로드 러닝을 할 때 횡단보도 빨간불 신호등에 멈추는 것에 나는 좀 민감한 편이었다. 중간에 멈추고 서고, 앱의 스톱,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서 까먹는 나의 페이스 숫자들이 꽤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게의치는 않는다. 뛰는 거리가 짧으면 짧을수록 그 찰나의 영향력이 큰(?) 편인데, 지금은 거리가 많이 늘어서 그 영향력은 미미하게 느껴진다.


걷다가 다시 뛰면 더 힘들 것 같은 느낌도 있는데, 중간에 쉬었다가도 뛰는 나로서는 이 부분은 전혀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걷다가 다시 뛰거나,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뛰거나 힘들지 아닐지는 그때 그때 다르다. 뛴 거리, 남은 거리, 페이스 그리고 나의 컨디션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으므로 더 힘들다 아니다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말 뛰다가 한 번도 걸은 적이 없었던 걸까?

너무 궁금해서 이 글을 쓰다 말고 책장에서 책을 꺼내서 한 번 훑어 봤다.

86페이지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그래서 마지막 5킬로쯤을 터벅터벅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라톤 레이스에서 달리지 않고 걸었던 적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까지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걷지 않는 것을 스스로의 긍지로 여겨왔다.

마라톤은 달리는 경기이지 걷는 경기가 아니다. 그것이 내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걸었다. 뉴욕시티마라톤대회에서 경련이 도져서 마지막 5km를 걸었다고 한다.

그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는 말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걷기만 한 건 아니다가 맞는 말이 될 것이다.


중간에 힘들면 걸을 수도 있고 쉴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대회에 나가보면 사실 걷는 사람을 수도 없이 볼 수 있고, 걷는 것과 뛰는 시늉만 하면서 걷는 속도로 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걷는 걸로 보일 수도 있다.


뛰다가 걷는 건 죄가 아니다.

하루키도 걸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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