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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야 하는 이유

by 존버헨리

유튜브에서 오랜만에 세바시 영상을 봤다.

나는 원래 유튜브를 잘하지 않을뿐더러 딱히 구독하는 채널도 없다. 며칠 전 아이에게 세바시 강연 재밌는 걸 찾아서 하나 보여줬더니, 추천 영상에 세바시 영상 하나가 떴다.


<지금 당신이 숨이 차도록 달려야 하는 이유>

정세희(재활의학과 교수)


달리기에 관한 영상이니, 눈과 귀가 솔깃해져서 소일거리 하는 동안 영상을 봤다.

예상한 대로, 강연자는 그냥 재활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20년 차 러너셨다. 20년이라니..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는다.


우리가 보통 달리기를 하는 이유를 말할 때, 건강이나 성취감 등을 얘기하는데, 의사 선생님은 재활의학과 교수님답게 재활의학의 관점에서 달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쉽게 얘기하자면, 뇌출혈 수술을 받고 난 후 러닝을 꾸준히 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몸의 회복 속도라던가 재활 의지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러닝을 꾸준히 한 사람은 재활에도 강력한 의지를 보여서 재활 속도도 빨랐고, 일반 환자 중에 의지가 별로 없었던 사람은 처음에 회복 속도가 빨랐으나 딱히 의지가 없었고, 몇 년 후에 다시 뇌출혈이 재발되어서 병원에 실려 왔다고 한다. 물론, 두 환자의 예시일 뿐, 러닝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재활 속도가 느리다거나 의지가 약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러닝 하면 심폐지구력이 좋아지거나 살이 빠진다거나 아니면 막연히 건강해지는 줄로만 생각했는데, 재활에도 도움이 된다니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러닝의 효능이었다. 내가 딱히 아픈 곳이 없어서 생각을 못해봤지만, 심폐기능도 좋아지고 피가 몸에서 잘 돌고 하니, 병을 이겨내는데도 운동을 안 한 사람보다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하다. 실제로 달리기뿐만 아니라 유산소 운동을 하면, 심장, 폐에 좋을 뿐 아니라, 혈관 자율 신경계, 면역, 에너지 대사 시스템까지 건강하게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달리기와 아무 관계없는 다른 신경과 세포들까지도 더 활성화되는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달리기랑 전혀 상관없는 부분까지 좋아진다니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의사 선생님께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말씀하신 것이니 믿어도 좋다.


생각지도 못한 재활에서의 러닝의 효능에 관한 영상을 보고 나서, 문득 나의 삶, 현재 상황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부끄럽지만 솔직한 얘기를 하자면,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인생의 바닥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여기가 바닥인지 더 내려갈 바닥이 있는지, 매우 심각한 나날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닝을 꾸준히 하고 있다.


러닝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을까?

정말 무너져 버려서 삶이 지금보다 더 망가지거나 나락으로 떨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힘든 시기를 버티고 견디게 하고 있는 게 러닝 덕분일지도 모른다. 러닝을 시작한 후로, 끈기도 생겼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런 마음도 자리잡았다. 어떤 일을 할 때도, <안되면 되게하자>거나, 금방 포기할 일도 조금만 더 해보자고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마치 인생에서의 재활기간이 지금이고, 러닝이 재활기간을 버티고 빨리 회복하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지금의 현실은 순간이 되고 과거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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