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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뛰고 있다

by 존버헨리

폭염과 폭우 사이.

정말 미친 듯이 덥다가 미친 듯이 비가 왔다. 장마가 끝났다더니, 장마 때보다 비는 더 오고, 여기저기 폭우로 인한 재해 소식이 들려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비가 웬만큼 오면 밖에 나가서 뛰겠는데, 너무 많이 와서 천변은 통제되었고 달리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제 오후 비도 그치고 해서 뛰러 나갔다. 늦은 오후이기도 하고, 비 그치고 흐린 하늘에 해가 간혹 반짝 나오는 줄 알고 별 긴장감 없이 나갔다. 그런데 나가고 보니, 해가 쨍~. 해가 아주 쨍쨍하다. 날씨 앱을 보니, 기온이 31도이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25도 전후였던 것 같은데, 이렇게 더웠나....


이왕 나왔으니 안 뛸 수는 없었다. 그래, 그늘로, 천천히 그냥 뛰면 되지. 그렇게 10km를 뛰었다.

31도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뛰는 분들이 계셨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또 적지도 않았다. 그렇다. 이렇게 더워도 뛰는 사람은 다 뛴다. 머릿속에 이 생각 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작년 여름에 풀코스 준비한다고 늦은 밤에 달리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달리던 일, 추운 겨울에 뛰던 일 그리고 비 오는 날 뛰었던 기억들..


작년 여름에 풀코스 장거리 연습한다고, 밤 10시부터 3시간 넘게 뛴 적이 몇 번 있었다.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뛰냐고 묻는다면, 시간이 그때 밖에 없으니까가 내 대답이다. 아이들 재우고 나와서 3시간을 뛰었는데, 나도 처음엔 밤늦은 시간에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천변에 뛰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밤 8시, 9시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그 늦은 시간에도 뛰는 사람이 분명 있었다. 뛰는 사람뿐만 아니라, 걷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그리고 한강에서 낚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 남들 다 자는 이 새벽에도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하 8도의 추운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나가서 뛰어보면 뛰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다들 무슨 생각으로 혹독한 날씨에 뛰는 걸까? 이런 날도 뛰는 게 아니라, 뛰어야 하는 시간인데, 날이 궂은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나온 것일까? 비가 와도 뛴다가 아니라, 뛰어야 되는 시간에 비가 올 뿐... 그렇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솔직히 나의 경우는 그렇다. 뛰어야 하는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뿐이다. 오늘 안 뛰면 다음에 뛰면 되지만, 다음에도 비가 올 수도 있고, 다음에는 내가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 24시간 중 대한민국 땅에서 누군가는 어디선가 뛰고 있을 것 같다. 밤늦게 퇴근하고 새벽에 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혼자 뛰는 러너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도 훈훈해지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든든해진다.


여러 상황에서 달리기를 해봤지만, 뛰면서 가장 반가운 사람은 우중런할 때 만나는 러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흠뻑 비를 맞고 첨벙첨벙 발소리를 내면서 마주 오는 러너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반갑고, 뿌듯하다. 이렇게 비 오는데 뛰는 미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고 위로가 된다.


예전에 어느 헬스 트레이너 브이로그에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새벽에 출근 준비를 하는데, 이 새벽에 출근하는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이 시간에 나온다는 회원님이 대단하신 거라고.. 그렇다. 날씨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지만, 시간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다.


밤이든, 새벽이든,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땡볕이든

열심히 뛰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러너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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