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을 응시하다

관수(觀水) - 현(玄)을 낚다 (임민수)

by 허 당
출처) 저자, 임민수, 낚싯줄, 혼합재료, 2025

마주한 관수의 형상


주말 오후, 바람 거친 개천을 거닐어 임민수 화가의 개인전이 열린 갤러리에 당도했습니다. 그곳에서 그의 '관수'(觀水) 연작과 비로소 마주했습니다.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150여 개의 덩이들은 서로 유사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고유한 형상을 지닙니다. 작가는 순백의 전시 공간을 거대한 원고지로 삼아, 덩이 문자들을 엮어 문장의 요소로 직조해 '관수-현(玄)'이라는 제목을 부여했습니다.



파동과 응어리가 빚어낸 조형의 언어


이 개별적인 덩이들은 언어적 의미를 상실한 듯 보이지만, 실은 작가 내면의 거대한 응어리, 즉 본질적인 관념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형상들은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 온 '관수도-찌' 시리즈에서 발현된 조형 언어입니다. 과거 작품 속 낚시찌에 고정되었던 시선은 찌를 넘어, 찌가 수면에 만들어내는 고요한 파동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파동은 관람객의 요동치는 마음을 잔잔한 호숫가로 이끄는 듯한 감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각각의 덩이에서 저는 '찌'에서 시작된 그 파동을 다시금 감각했습니다. 낚시라는 행위에서 비롯된 이 파동은 작가의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와 관념의 소용돌이일 것입니다. 이는 마치 에드워드 로렌츠의 혼돈 이론 속 '나비효과*'처럼, 미미한 시작이 예측 불가능한 결과로 이어지는 우주의 이치를 시각화한 듯합니다.

출처) 저자, 임민수, 관수-부유 1, 낚싯줄, 혼합재료, 138x191cm, 2025

전시장에 걸린 푸르고 붉고 검은 실타래 형태의 덩이들은 단순히 낚싯줄이 꼬여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형태 너머로, 그것들은 과거 '찌'에서 감각했던 수많은 파동과 연결됩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진원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이 혼돈의 타래는 지성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에 속합니다.


낚시는 물이라는 근원적인 장소에서 무언가를 낚아 올리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이 욕망은 작가를 끊임없이 요동치게 했을 것이며, 작가는 그 격렬한 파동을 억제하고 통제해야 했을 것입니다. 꼬이고 요동치는 내면의 움직임을 고착화하는 방식으로 작가는 작품 위에 호분을 덧입혔습니다. 이는 '관수-아(我)'라는 작품 속 작가의 외침, "아! 축복이다. 응어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임민수, 관수(觀水)-현(玄) 전시 안내장, 예술곳간, 2025

낚시,

자기 응시,

그리고 삶의 은유


낚시하는 인간이 물이라는 세상을 응시하고 찌를 바라보는 행위는 자신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수면을 통해 자신을 투영하는 이 행위는 낚시꾼뿐만 아니라 전시장의 관객에게도 동일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한순간의 파동이 삶 전체에 번져나가는 이 감각은 류시화 시인의 시**처럼, 깨달음의 순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작가의 시선은 멀리 떨어진 관념의 세계가 아닌, 바로 지금, 이곳에 놓여 있습니다. 관객이 작품을 보는 행위는 결국 낚시하는 인간이 '본다(Seeing)'라는 행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작가가 낚아 올린 것과 관객이 낚아 올린 것은 형태는 다를지언정, 각자의 욕망이나 희망, 기쁨일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속 고독한 존재처럼, 임민수 작가 역시 낚시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응시하고 자연과 교감하며 욕망을 절제합니다. 다만 그는 욕망을 억누르기보다, 찌에서 시작된 파동을 응시하고 응어리진 내면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마주하는 것입니다.




*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N. Lorenz)가 1960년대 초 기후 모델을 연구하던 중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나비'는 로렌즈 끌개(strange attractor)의 모양이 나비와 닮아 붙여진 이름임.『카오스의 본질』에드워드 N.로렌즈, 박배식 옮김, 파라북스, 2006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열림원, p.10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이인규 옮김, 문학동네, 2025


By 박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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