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추억 속 우리는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지 않다.

by 여니


글을 시작하기 전, 모든 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려 한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언제였는가? 후회했던 순간들은 언제인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누구나 추억이란 단어 속엔 좋은 기억들만 가득하길 원한다. 하지만 우리 기억 속 담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프고 시린 기억들 또한 추억이다.


유아기

가족들의 보호와 사랑을 듬뿍 받을 시기.

청소년기

자아와 신체가 성장해 나가며 점점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시기.

성인

가족 품을 벗어나 작은 일 하나도 책임을 다해 살아가는 시기.


내 나이 어느덧 30대 초반.

옛날이라 치면, 한가정의 엄마가 되어 자식을 돌보며 전업주부생활을 살아가야만 했던 나이. 어느새 내가 30대라는 게 아직 익숙해지질 않는다.

언제나 10대처럼 밝고 순수하게 살아가길 바랐던 나인데 사회에 더러운 모습, 이기적인 모습 물론 좋은 부분들도 있었지만 둘러말해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것이다.”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고는 한다.


솔직히 30여 년 살아오면서 인생에 관해 깊게 생각을 하면 정의 내리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이를 통해 살아온 나날들의 흔적, 추억 또는 회상, 좋았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만 아팠던 기억은 다 큰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그 시절 어린 나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라 글을 쓰게 되었다.



"엄마는 왜 아버지 같은 사람이랑 결혼을 한 거야?"

이 기억은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 정확히 언제인지 가늠이 가질 않지만 내가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말이다. 항상 이런 질문에 엄마의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그러게나 말이다."

작은 한숨과 함께 들려오는 대답은 유년기 시절 나에게 답답함을 안겨주었다. 어느 순간 '혹시 내가 태어나버려서 엄마를 곤란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생겼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대가족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엄마, 아버지, 나 이렇게 살았다.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할아버지는 7살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듯한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 어렴풋이 기억나지 않는다.

반대로 할머니는 내가 성인이 될 무렵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남아선호사상에 찌들어 계셨고 아버지와 엄마의 부부싸움에 항상 끼여 엄마를 쥐 잡듯이 대했던 것도 기억난다. 동네가 시끄럽니 엄마가 무조건 잘못한 것이라며 생각만 해도 구역질 올라오는 앞뒤 꽉 꽉 막힌 사람이었다.

삼촌은 내 어린 시절 큰 비중이 없었는지 더욱 기억이 가물하다. 장가가기 전까지만 같이 살았다던데 한 장의 사진 속 앳된 삼촌이 나를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같이 살았었구나 하는 정도?


시집살이라는 게 쉬운 법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지금과 많이 달랐으며, 다르다 해서 그땐 그랬지 하고 넘어가기 또한 싫다.


엄마는 항상 머리가 길었다. 긴 생머리에 머리를 꽁꽁 묶고 다녔다. 바람 잘날 없는 우리 집. 여느 때와 같이 부부싸움이 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제 화에 못 이겨 또 흉기를 휘둘러 위협을 가했다.


엄마는 필살적으로 나를 데리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할머니까지 개입해 덥석 엄마의 묶여있는 머리채를 쥐어 잡고 "영석아! 내가 잡고 있으니 도망 못 가게 해라! 지갑 숨겨라!" 하며 소리쳤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신다 했던 한마디. "내가 죽어야지 이런 꼴 안 볼 것 같아."

그 날이후 엄마의 긴 생머리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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