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크리스마스 선물.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 어느덧 첫 월경을 시작하게 되었다. 생식기나 겨드랑이에 털이 하나둘씩 자라고 가슴이 점점 나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성장과정들인데 그것이 너무 싫었다. 여자아이가 아닌 남자아이로 살고 싶었다. 그럼 '더 이상 아버지는 나에게 더러운 손길을 주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제일 컸다.
치마보다 바지를 고집했고,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리 점심시간이 되면 운동장에 나가 남자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거나 농구를 했다. 머리는 항상 짧게 자르고 다녔으며 여자인 친구들보다 남자아이들과 자주 어울려 다녀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나를 남자아이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날 점점 나오는 가슴이 싫어 집에 있는 의료용 붕대로 가슴을 둘둘 휘감아 압박해 봤다. 거울을 보며 내 모습이 어떤지 확인해 보고, 가슴이 압박당해 주는 불편함 보다 어떻게 해서든 가릴 수 있다는 생각에 자주 애용했다. 엄마는 매번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며 항상 잔소리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즈음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유아용 스포츠브라를 사 온 적이 있다. 회색깔의 레이스가 달린, 당시 유행하던 '콩콩이'의 프린팅이 정중간 자리 잡혀 있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져 그간 당한 일 들에 대한 PTSD가 왔는지 울고불고 소리쳐댔다. 엄마는 이런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도 외할아버지에게 첫 브래지어를 선물 받은 적 있다며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다독였다.
하지만 그 어떠한 말들로 나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화가머리끝까지나 부엌에 있는 가위를 들어 이 브래지어를 자르려다 엄마가 겨우 뜯어말렸다. 초등학교를 등하교하다 만난 변태아저씨들과는 또 다른 성적수치심이었다.
그렇게 첫 브래지어선물은 내생 최악의 크리스마스 중 하나로 머릿속에 자리 잡혀 살아가고 있다.
받은 속옷은 옷장서랍에 썩혀져 갔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길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