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주는 사람.
인간답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내 어린 시절은 왜 아파야 했을까? 잊힐 법한 세월들을 보냈는데 지워지질 않는다. 억울했던 순간들이 하나 둘 기억으로 번져가면 한도 끝도 없이 추락해 결국 나락으로 빠져든다.
그저 부모밑에서 사랑받으며, 성장해야 할 나이에 엄마를 보호자가 아닌 보호를 해줘야 하는 매개체로 생각했던 것 같다.
동생들이 하나둘씩 태어나면서 나는 엄마에게 '이혼해.'라는 말을 서슴없이 던졌다. 편히 살고 싶은 마음이 커져온 탓이다. 학교를 다녀와 숙제를 하고 엄마가 해주는 저녁밥상을 먹은 뒤 TV나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둘째 동생과 가끔 놀이도 하며 그 시간만큼은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해가 저물어가고 아버지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동생과 나는 시계를 자동반사적으로 보았다. 아버지의 주차하는 소리,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 그리고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자는 척 숨을 죽였다.
깨어나 있는 것을 알면 싫어하는 짓들을 해 고통스러울 것이 뻔했다.
여기서 싫어하는 짓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버지는 '자식'이란 단어를 마치 소유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심심할 때는 장난이라며 때리고, 욕하고, 누워서 물심부름, 손 앞에 있는 휴지나 리모컨마저도 가져오라는 강압적인 말들.
싫다는 의사표현에 반항이라 간주하며 폭력적이고 잔인한 말들을 해 매번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밥상에선 맛있는 음식을 자신이 제일 많이 먹어야 했고, 우리들 입에 들어가는 것을 아까워했다. 다시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에게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평소에는 '가시나'라는 단어를 사용하다 화가 나면 '씨발년'이었다.
싫어하는 짓들 중 제일 최악인 하나, 성추행.
이 짓들에 제일 적합한 단어는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 말고는 대입시킬 단어가 없다. 성장발육이 남들보다 조금 빨랐던 나에게 미치도록 고통이었다.
엄마눈을 피해 가슴을 쥐어만지고 심한 날은 문을 잠가놓고 윗옷을 올려 가슴을 빨아댔다. 그저 어리기만 한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매번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내가 뱉어대는 말들이 알아듣기 힘들었거나 아님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동생 육아와 할머니의 호된 시집살이에 힘들다는 생각에 지쳐 개입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저 장난이겠지 원래 장난기 많은 사람이라 그래. 너도 알잖아."
"좋다고 표현하다는 게 자꾸 울려버리네." 하며 넘겨 짚기 일쑤였다.
아직도 그날들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라던지 대답을 듣기 어려웠다. 다 큰 어른이 되어 마음이 너무 아픈 날 한 번씩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엄마의 반응은 회피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 모습에 울컥한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화의 끝은 항상 내 잘못처럼 느껴졌다.
엄마 말대로 잊어보려 했다. 잊고 싶다, 잊을 수 있다. 하지만 말처럼 왜 잊히질 않을까? 머릿속에서 한 편의 영상을 틀어놓은 것처럼 그날 일들은 지독하게 생생하다. 잊고 싶었던 기억들은 스멀스멀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벅차오른다. 이 때문에 분노 속 하루하루 살아갔던 날들도 있다.
미치도록 증오하였으며, 이성의 끈을 놓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나 자신을 더욱 갉아먹는 악순환이 되어버리고 만다. 가해자인 아버지는 죄의식이 전혀 없어 보여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