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유발자.
그날 이후 아버지는 여동생에게 더 이상 손을 대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에게도 허튼짓들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분이 나쁘거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면 폭력성 짙은 언행들과 손찌검은 끊이질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후로 점점 심해져 갔다.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들 사이에선 '칼빵'이란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칼빵'이란 학용품칼로 좋아하는 아이의 이름을 적거나, 남자친구의 이름을 팔목에 새기는 것이다.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그저 친구들 사이에 끼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행동으로 곧장 옮겼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나중에 얼마나 큰 파장을 가져올지 모르고 말이다.
먼저 이 상황을 알게 된 것은 엄마였다. 죄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탓에 친구들한테 자랑하듯 보여준 행동을 엄마에게도 똑같이 보여줘 버렸다. 엄마는 충격과 동시에 화를 내셨다. 왜 그랬냐며 물어보곤 한숨과 함께 다시는 이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며 타이르셨다.
아버지에게 들키는 한 죽은 목숨이라며 구급상자에 밴드를 꺼내어 붙여주고 “절대 들켜선 안된다.”지레 겁을 주었다. 그제야 내 행동에 잘못됨을 인지하였다. 들키면 안 된다는 불안과 맞기 싫어서 추스르고 다니던 모습들은 누가 봐도 어색했다.
온 식구가 차를 타고 이동하던 어느 날, 눈치 빠른 아버지는 밴드가 뭐냐며 강압적으로 팔을 잡아 뜯어냈다. 팔목에 새겨진 빨갛게 부어오른 이니셜을 보고선 아무 말 없이 운전대를 다시 잡아 차를 몰았다.
이내 도착한 곳은 당시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던 떡집이었다. 주차를 하고 차문을 열어 내 멱살을 잡아 그곳으로 욱여넣었다."나는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쑥 찾아온 우리 식구를 보고 친구분은 인사를 건네다 말고 아버지의 행동을 주시했다. 아버지는 곧장 온갖 식기들이 난무한 주방으로 달려들어가 제일 큰 식칼을 집어 나를 향해 던졌다. 이걸로도 해보라며 갖은 쌍욕과 함께 발로 복부를 걷어차는 등 머리채를 잡고 벽으로 몰아 사정없이 구타했다.
엄마는 말리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한 채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살기 위해 빌었다. 말리는 사람 없이 주먹질과 발길질을 견뎌내다 간신히 숨이 붙어있을 만큼 맞았을 때,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왜 그랬는지 그제야 질문했다.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자 이 화살들은 독이 되어 엄마에게 날아갔다.
"애새끼 하나 참 잘 가르쳐놨네."
그 한마디에 엄마의 시선은 바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