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또라이의 기준.

by 여니


사춘기가 왔을 때는 생각이 무척 많아졌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살아야 할 자격이 있을까?’이 두 가지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풀리지 않았다. 그 생각들에 잠겨있으면 어느 순간'자살'에 대해 검색을 했다.

이런 부정적인 영향들이 학교에서 마저도 이어졌는지 중학교1학년,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엄마와 함께 정신과를 찾게 되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정신과는 그야말로 '대실패'였다. 이리저리 알아보기는커녕 가장 가까운 곳을 선호하던 엄마는 집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당시 TV로 봤던 정신과에 대한 장면들은 어린 나에게 충격과 공포심을 심어주기 좋았다. 방문한 곳 또한 역시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느낌을 줘 낯선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긴장감이 최고조로 도달했을 때 선생님이 첫 질문을 했다.

"뭐 때문에 여기 왔어?"


강압적이고 살짝 신경질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모습을 본 엄마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오게 되었다고 대신 설명해 주었다. 쥐고 있던 볼펜으로 종이에 이것저것 작성하더니 또 다른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진료가 끝난 뒤 원무과에 수납을 하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제야 뭔가 잘못됨을 깨달았는지 엄마의 얼굴이 붉어지며 말했다.

"다시는 여기 오지 말자. 무슨 경찰서도 아니고 애를 데려다가 취조를 하냐?"


나도 그 말에 동의를 했다. 진료를 받는다는 느낌 보다 마치 내가 잘못을 저질러 경찰서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엄마의 불만은 계속 커져 갔고 그런 엄마를 달래느라 진을 다 뺏다. 며칠뒤 이곳저곳 알아봤는지 집과 거리가 있는'소아청소년정신과'를 찾게 된 엄마는 차를 몰아 다시 한번 나와 함께 동행했다.


처음 방문한 병원과는 180도 다른 느낌이었다. 그곳이 취조실처럼 어두운 배경이었다면 새로 찾아간 곳은 밝고 따사로운 배경이었다. 프런트에 우리 모녀를 반기며 예약을 따로 했냐는 질문과 함께 초진기록표를 작성하시는 선생님덕에 금세 마음이 놓였다.


폭신한 소파에 앉아 대기하는 동안 전에 느꼈던 불안과 초조함은 온데간데없이 병원에 배치되어 있는 잡지책을 읽는 여유도 가졌다. 그 때문인지 엄마의 동행 없이 혼자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원장선생님과의 첫 대면에서 '상담'이라는 맹목적인 진료보다 낯선 누군가에게 태어나 처음으로 내 속마음을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신 떠들어대던 나와는 다르게 엄마와 원장선생님 두 분의 시간은 충격과 슬픔이었나 보다. 진료가 끝난 뒤 엄마와 할 이야기가 있다며 원장선생님은 잠깐 소파에 앉아 기다려주겠냐며 부탁하셨다.


시간이 꽤나 흘렀을까 엄마가 원장실문을 닫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땐 안경사이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두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 모습에 걱정이 앞서 말없이 다가가 껴안아주었다.


등 뒤로 엄마의 뜨거운 눈물들이 옷을 축축하게 적셨다. 부부싸움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외에 처음 보는 엄마의 슬픔이 낯설기만 했는지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진정이 되었을 때 수납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라 여겼지만, 나는 남아서 해야 할 검사들과 상담들이 있다고 했다.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하다며 할머니식사를 챙기러 먼저 집으로 가봐야 한다는 말과 아버지가 병원으로 데리러 올 것이라 전했다. 괜찮은 척 배웅을 하고 선생님을 따라 뇌파검사, 심리검사, 상담등을 진행했다.


모든 검사들이 끝나갈 무렵, 언제 도착했는지 아버지가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난생처음 해본 것들에 피곤했는지 조금 지친 몸을 이끌고 나와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아버지는 나를 보며 말했다. "너 또라이냐? 여기 또라이들만 오는 병원이야." 아무런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조용히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해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있던 엄마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엄마. 나 또라이야?"


이전 06화나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