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중2병.

by 여니


다신 못 갈거라 여겼던 병원을 6개월가량 다녔다.

다행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반겨주는 선생님들 덕분에 마음 편히 방문했다. 아버지는 크게 소란을 피운 이후 병원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집이 조용해져 평범한 일상생활을 만끽하며 학교를 다니던 어느 해, 시간은 벌써 새 학기를 맞이하는 15살의 중학교2학년이 되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만 같던 기분도 잠시, 평소 내성적인 성격 탓에 교우관계가 어려웠던 나는 같은 반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졌다. 새 학기를 시작할 때쯤 병원진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학교 측에 알려져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상담실선생님이 나를 찾아 방과 후 상담을 하는 시간들이 잦았다. 그런 모습이 다른 아이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나에게 찾아와"선생님이랑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니?" 하며 물어보는 아이도, 이상한 소문을 지어내 그마저 있던 친구들과의 사이를 갈라놓는 아이들도 있었다.


부정적인 시야 속에서 학교를 나간다는 건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한 학기가 끝나기 전 지칠 대로 지쳐버려 등교를 거부했다. 사춘기가 유독 별나게 온 거라며 엄마의 한숨은 깊어져 갔다.

부모님의 고민 끝에 결국 '전학'수속을 밟게 되었다. 아버지의 고등학교 선배가 학생부장으로 계시는 학교이기에 밉보이는 짓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를 하던 엄마와의 약속을 저버린 건 아직도 가슴이 쓰린다.


'전학생'을 외부인 취급하던 아이들은 삼삼오오 뭉쳐 다녔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 법도 한데 당시의 나로서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말을 걸어와주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어떻게든 친해지려 노력했다. 공감대형성을 빙자한 뒷담화가 일상이었을까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슬슬 다른 그룹의 아이들을 험담하기 시작했다. 그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깊이 생각하지 못한 반응들은 커질 대로 커져 험담을 같이 나눈 친구들의 이간질속 폭탄이 되어 내게로 날아와 버렸다.

15살, 난생처음으로 느낀 '좌절'이었다.


철저히 고립되어 가는 환경 속 숨통이 점차 조여와 또다시 등교거부를 했다. 가출을 한날은 엄마손에 붙들려 결국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의 구타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학교를 안 갈까 부모님과 함께 학교로 동행한 날, 끝까지 등교거부를 하는 모습에 화가 끝까지 난 아버지는 교실 안 아이들을 신경 쓰지 않고 책상의자로 나를 내려찍었다.

할 수 있는 발악이란 다 해봤으나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점차 시들어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도망친 날은 같은 반 애들에게서 '문자테러'가 왔다.

"너네 어미가 학교 와서 너 찾는다ㅋㅋㅋ데려가라."

충격적인 문자내용을 어른들께 보여줬을 땐, 문자를 보낸 아이가 미안함은커녕 왜 자신이 보낸 문자를 어른들께 보여줬냐며 질책했다.


다시 등교 한날은 학생부장실로 끌려가 ‘가출로 인한 정신교육'이라는 죄목아래 하루종일 매질을 당하고, 심한 날은 뺨을 맞아 입안이 터져 피가 난적도 있었다. 학교를 가도 아팠고 집을 와도 죄인취급하는 가족들 때문에 아팠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아닌 죽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밤마다 잠들기 전 막냇동생이 가지고 놀던 '요요'줄을 늘려 목을 졸라 숨을 헐떡이다 잠드는 날이 많았다.

며칠뒤 나는 삶을 끝내고자 생애 첫 자살시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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