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처음으로 유서라는 것을 작성해 봤다. 볼펜 한 자루를 집어 들고 A4용지에 내가 삶을 끝내려 하는 이유들을 한 자 한 자 적어나갔다. 엄마에게 미안함이 사무칠 땐 눈물이 어찌 그리 났을까 처음 흘린 한두 방울을 시작해 종이 위로 떨어지는 눈물들을 닦아내고 다시 적기를 반복했다.
눈물 젖은 유서를 반으로 접어 하얀색 편지봉투에 고이 넣어 두었다. 부을 대로 부어버린 두 눈을 들키기 싫어 찬물로 샤워하고 머리를 말린 뒤 여동생을 내방으로 불러냈다. 평소 동생이 탐내던 물건들을 이젠필요 없다며 선물해 주었다. 두 눈이 휘동 그래진 동생은 건넨 물건들을 받고서 천진난만하게 자신을 주는 것이냐 물어보곤 기뻐 날뛰었다.
곧장 동생은 거실로 달려가 TV를 보며 휴식을 취하던엄마에게 선물을 자랑했다. "언니가 웬일이래? 드디어 철이 든 거야?" 하며 엄마의 장난 섞인 말들이 들려왔다. 조금의 의심도 받지 않은 듯하여 마음이 놓였다.
밤이 깊어져 모두가 잠든 꼭두새벽, 부엌으로 들어가 싱크대선반에 가장 큰 컵을 집어 들고 물을 가득 부었다. 혹여 누구라도 잠에서 깰까 최대한 행동을 조심스럽게 했다.
냉장고문을 열어 할머니가 복용하는 알약들부터 해서 유통기한이 지나 구석에 방치돼 있던 물약들까지 닥치는 대로 약이란 약을 모두 꺼내 방으로 몰래 숨겨왔다. 며칠 전 약물과다복용으로 죽을 수 있다는 인터넷글을 보고 행동으로 옮기려 한 것이다.
책상 위 들고 온 약들을 전부 꺼내놓고 의자에 걸터앉아 한번에 약봉지 두세 개씩을 집어 봉지를 뜯었다. 무작정 입안으로 털어 넣고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몇 번을 반복했을까 점점 배가 차올랐다.
한 시간가량 정체불명의 약들을 꾸역꾸역 삼켜가고 있을 때 방문을 잠그는 걸 깜빡했는지 손잡이가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아무런 미동조차 없이 열린 문쪽을 바라보았다. 잠옷차림의 엄마가 딱딱히 굳어버린 채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말없이 문쪽을 응시하다 손에 쥐고 있던 약봉지를 다시 뜯으려는 찰나 엄마는 황급히 다가와 뭐 하는 짓이냐며 손목을 붙잡아 저지시켰다. 책상 위에 쌓인 수두룩한 빈약봉지들을 본 엄마가 이내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을 때 정신을 조금 차렸다.
"엄마 나 더 이상 살기 싫어."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얼굴을 들지 못한 채 흐느껴 우는 엄마를 봐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러려고 주연이한테 아끼는 물건들을 준 거니?"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질문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약들을 때려 부은 탓에 매스꺼워 구역질이 올라와 화장실로 갔다. 엄마는 따라 들어와 변기를 붙잡고 속을 게워내던 등을 말없이 두드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