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직원이 일의 주도권을 갖는 방법
우리는 결정 권한이 없어, 고객이 결정하는 것에 따라야지
대행사(에이전시)에서 AE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다. 대행사를 향해 들어오는 의뢰의 80%는 기획보다는 실행에 초점을 맞춘 의뢰다.
고객사는 본인들 내부에서 실행할 수 없거나 비용 효율이 떨어지는 일을 대행사에게 의뢰한다. 홍보팀이 없는 기업은 홍보 대행사에게 언론 보도 및 대응을 요청하고, 마케팅팀이 없는 회사는 메타나 구글 같은 광고 매체 운영을 요청한다. 모든 것을 갖춘 대기업의 경우도 효율적인 비용 집행을 위해 실행 영역의 업무는 대행사를 활용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대행사의 업무는 제약이 많다. 자의적 판단보다는 고객사가 기획한 아이디어를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업무를 진행한다. 고객 입장에서 효율적 업무 진행을 위해 대행사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대행사가 자의적 판단으로 업무를 진행한다면 고객사의 업무 진행은 비효율화된다.
이렇게 말하면 대행사는 고객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쉬운 회사처럼 보이지만, 고객사의 요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 경험 상 고객사를 완전히 만족시킨 프로젝트는 10년 간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 중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대행사에서 훌륭한 직원은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는 직원보다는 고객사의 요청을 '알잘딱깔센' 수행하는 직원이다. 그래서 인지 대부분의 대행사 직원들은 3년을 주기로 무기력함이 찾아온다. 많은 회사들에서 근속 3년을 복지 혜택이나 승진 등의 기준으로 두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행사 직원들에게 주기적으로 무기력감이 찾아오는 이유는 일의 주도권이 없어 업무 효능감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남이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대행사 직원이 일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생각하는 방법은 업무에서의 '뻘짓'과 '삽질'을 통해 나만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뻘짓과 쓸데없어 보이는 삽질을 통해 내 관점을 가져야 한다. 내 관점을 가지면 업무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고객사 역시 자신들이 요청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문제점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대행사에게 제안받는다면 대행사의 업무에 만족하고 이후 업무에서도 대행사의 의견을 경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업무 주도권을 가지게 만드는 나만의 관점은 한 번에 생기지 않는다. 나만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는 각 연차에 맞게 요청받은 업무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고민하고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내 관점을 가지는 건 각 사안에 내 의견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내 의견을 내기 위해선 근거가 필요한데 그 근거는 무수한 허튼짓과 삽질, 즉 시키지 않은 테스트와 시도들을 통해 만들어진다.
나 역시 아직도 실무를 할 때는 효율성이라는 함정에 빠져 동료들에게 효율성을 중심으로 업무 요청을 많이 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나만의 관점 역시 수많은 실패와 허튼짓, 삽질을 하며 끙끙 앓던 순간의 결과물이다.
이 글을 읽는 분이 저연차 직장인이시라면 꼰대 같지만 조금 더 시간을 들여 고민해 보시길 권하고, 고연차 직장인 분에게는 후배들에게 뻘짓과 삽질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멋진 선배가 되시길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