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입

by hyeon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듯 평소처럼 나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돌려보고 있었다. 내가 가진 카메라는 소니 a58. 내가 가진 렌즈는 기본으로 딸려오는 번들렌즈 하나와 F1.4 30mm 단렌즈, 달랑 두 개뿐이다. 별 것 없지만 그래도 사진과 영상이 좋아서, 열심히 돈을 모아 산 것이기 때문에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솔직히 중고로 산 지도 근 3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이제는 별스러울 것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찍은 사진들은, 그것이 오래됐든 아니든 볼 때마다 별스럽다. 특히나 여행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은 내가 찍은 무엇들 중에서도 나의 감정과 시선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더불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꽤나 많이 변했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좀 더 즐겁다. 옛날의 내가 가지고 있던 시선들을 하나씩 쳐다보다보면 단순히 재밌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하고, 생각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허접해 보이기도 하고,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내가 21살, 22살 때 오사카와 도쿄에서 찍었던 여행사진들을 풀어놓고 싶었다. 단순히 렌즈가 밝다는 투박한 이유로 단렌즈만 사용했던 터라 항상 아쉬운 화각의 사진들은 기술적 부분으로 따져도 여러모로 아쉽고, 어떤 고매한 가치를 담고 있는 사진들도 아니기에 형편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1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다녀 온 일본의 두 도시 여행에서 찍은 그것들은 내 맘에 들 정도, 내 눈에 예뻐보일 정도는 된다. 특히나 그 사진들은 나의 무의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편애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단순히 글과 사진이 좋아서 무작정 여행기를 쓰는 것이지만 변명하듯 몇가지 이유를 더 궁시렁대보자면 이건 나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즐거운 방법이다. 내가 어떻게 변했는 지를 느낄 수도 있게 해줄 것 같고.


이렇게 별 의미없이 찍은 사진도 별스러워 보이는 건 시간이 지나서일까 궁금해지지만 확실히 답을 내리긴 어렵다.


그 중에서도 왜 일본 여행의 사진들이냐 혹시나 궁금할까봐, 아니 솔직히 내가 궁금해서 답을 해봤다. 그리고 여행들 중에서도 왜 해외여행인지. 해외여행인 이유는 그냥 해외여행이 더 재밌으니까, 간단하게 답하고 싶다. 왜 일본 여행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이 필요했다. 고등학교 시절 꿈 중의 하나가 해외여행이었을 정도로, 여행에 빈곤했던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첫 해외여행을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해외로 여행갔던 적은 총 3번. 순서대로 말하자면 한 달간의 유럽(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3박 4일의 오사카, 5박 6일의 도쿄, 5박 6일의 상하이다. 유럽은 가장 긴 여행이었지만, 학교와 연계된 단체 연수겸 여행이라 자유로운 여행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크게 기억에 남은 것들은 같이 간 사람들과의 추억이 대부분이다.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깰 수 있었던 정도의 의의가 있는 여행이었다.


오사카는 내가 처음으로 간 자유 여행이었기에 서투르지만 여행다운 여행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여행다운 여행이냐 하게 되면 괜히 골이 아파지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느꼈다고 생각할란다. 구체적인 것들이 궁금해진다면 내가 쓰게 될 여행기에서 한 개, 두 개씩 끄집어내도 이런저런 이유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돌아와서 왜 일본이냐 하면, 일본은 내가 두도시를 여행했기 때문에 다른 곳들보다 좀 더 깊게 느낀 곳이다. 특히나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측면이 많아서인지 더욱 이해하기 쉽고, 적응하기 쉬운 나라였다. 그리고 사진이 마음에 드는 것도 많다. 상하이는 혼자갔기 때문에 일본 여행기가 이래저래 쓸 말도 많을 것 같다. 도쿄에서는 귀찮아서 사진을 많이 안찍었는데 여행기에서 도쿄를 빼고 싶지도 않았다. 오사카에서는 죽어라 찍었기 때문에 사진이 별로 없는 도쿄도 오사카와 묶으면 여행기에 담을 수 있었다. 찍은 사진들을 막연한 주제별로 분류하기도 쉽고. 이 정도의 이유가 지금 생각나는 전부다. 그리고 이 정도의 이유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가치없는 어떤 글로 전락하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지만 고심히 사진을 고르고 싶지도 않았고 그 사진들에서 고매한 가치들을 끄집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사진을 보고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여행의 기분을 다시 느끼고, 그냥 친구와의 즐거운 대화처럼 잠시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할 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