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기대이상으로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여행에서 중요한 것으로 꼽히는 많은 것들 중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를 가느냐다. 마음처럼 바람따라 구름따라 다니다가는 그저 정처 없어질 뿐이다. 목적 없이 헤매는 것만큼 소모적인 일이 또 있을까 싶은 나는 거의 모든 것에 엉성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앞서서는 계획을 조금이라도 짜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보통은 교토의 번화가 시조가와라마치와 같은 느낌으로다가 어느 정도 구체적인 장소만 정한다. 번화가에 가면 대충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니까. 이런 방식으로 여행지를 대강 고르고, 유명한 관광지 한 두 군데는 꼭 가본다. 나는 뭐 구석을 샅샅이 훑어볼 만큼의 꼼꼼한 여행자도, 발자국 없는 곳을 여행하는 노련하고 모험심 넘치는 여행자도 아니기에, 유명한 곳에는 유명한 만큼 뭔가가 있겠거니 한다. 그렇기를 기대하기도 하고 그렇겠지 하고 믿기도 한다.
그런 곳에 가면 대부분 왜 그곳이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눈이 잡아당겨질 만큼 화려한 외관을 하고 있거나 경이로울 만큼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어떤 문화재 등의 것이거나, 유명한 누군가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이라거나. 등등의 이유로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사실 그런 등등의 이유들만이 느껴질 뿐인 경우가 많다. 워낙 많이들 모여드는 사람들 때문에 그 장소의 고유성이 사라져 버린 경우도 많고, 알맹이가 없거나,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을 때 특히 그렇다. 그때부터는 내 선택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낯선 사람을 의심없이 따라가는 꼬마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여행에서 가장 귀한 시간을 잃은 것 같은 낭패감이 든다. 책이나 사진으로 접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을 땐 여행의 무용성이 깊은 한숨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곳들을 지극하게 여행지로 고른다. 앞선 생각들이 똑같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다. 미리 여행지를 정말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은 그 자체로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 유명한 이유가 있는 만큼 그 정도의 이유면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여행 경험이 적은 만큼 괜히 감춰진 무엇을 발견하려는 여행자 놀이를 하기보단 할 수 있는 만큼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래서 그때 일본 여행에서 골라낸 유명한 관광지는 오사카성과 아사쿠사, 도쿄타워였다.
오사카성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 더웠다. 아침 일찍 출발했음에도 습하기까지 한 날씨였다. 오사카성 주위는 경복궁처럼 도심이 둘러싸고 있었다. 위 사진이 오사카성을 가면서 찍은 사진들인데, 천수각에 올라서 찍은 사진을 보면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이 생생하지는 않을 정도로 든다. 어쨌든 경복궁처럼 이질적인 느낌이 주는 재미를 느끼며 걸어가니 오사카성이 보였다. 도심으로 둘러싸여 있는 줄 알았던 오사카성은 사실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성벽은 또 호수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금은 의미가 없지만 비행기가 없던 시절 3겹의 벽이 쌓여있는 오사카성에 적이 쳐들어가기란 굉장히 까다로웠을 것 같다. 그리고 호수에 비친 오사카성의 모습이 꽤나 멋졌다. 덥긴 하지만 날씨도 좋고, 물의 피부까지 잔잔했던 날 오사카성에 갈 수 있게 된 것은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사카성 변두리에 있는 곳들도 잘 가꿔놓은 덕에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도 있었다. 역시 소소한 부분들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일본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공원처럼 꾸며진 곳에서 잠시 땀을 닦고 오사카성을 눈앞에서 보기 위해 다시 걸어갔다.
그리고 솔직히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옛 것들과 마주하는 일은 대부분 흥미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 여행에서만큼은 그것이 조금 어려웠다. 어쨌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끔찍한 일을 수도 없이 저지른 자들과 그 후손들이 가꿔온 무언가를, 그들의 뿌리가 되는 그 무언가를 마주하며 마냥 신기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편견이 덧씌워진 탓인지 개인적으로 일본의 문화 중 몇몇은 어딘가 모르게 얍삽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오사카성에게서도 마찬가지의 느낌을 받았다. 알고 보니 역시나였는데, 오사카성 천수각에 올라 안내책자를 살펴보니 온통 금박으로 뒤덮여 지금보다 화려했다고 하는 오사카성의 원형은 1585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은 것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공격으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1620년에 도쿠가와 가문에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성을 재건했으나 벼락을 맞고 1931년에 재건된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정도의 정보도 모르고 여행을 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니. 화려하고 멋지지만 뭔가 불쾌한 느낌이 들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더군다나 그 시절에는 더욱 번쩍였다니. 가장 최근의 재건 시기인 1930년대로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다. 식민 통치 시절에 이렇게 압도적인 건물을 지었다는 것(재건한 것이지만) 자체가 조선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 일제의 '힘'에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벼락을 맞았다니, 찌질한 마음을 숨기고 싶으나 어쩔 수 없는 통쾌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천수각(성의 가장 높은 부분을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보인다)에 올라가 안내책자를 보기 전까지는 그저 느낌이었고 오사카성을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아시아의 성'이라고 한다면 이정도의 모습은 갖춰야 할 것 같다고 느낄 만큼이었다. 벚꽃이 필 즈음에 맞춰가면 더 멋지다는데, 너무 사쿠라한 것보다는 지금이 더 나은 것 같았다. 역사적 건축물에 대해서는 딱히 감흥이 없기 때문에 더이상의 무엇을 느끼지는 못했고, 천수각은 좁은데 사람들은 쉬지도 않고 올라오니 얼른 자리를 양보해야겠다 생각했다.
오사카성도 오사카성이지만, 아까 말했듯 오사카성을 둘러싼 곳들이 너무 괜찮았다. 오사카성 천수각에 올라 아래를 찍은 사진인데, 공원처럼 조성해놓은 곳곳들이 참 단정해 보였다. 완벽한 구성을 띄고 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굉장히 조화롭다. 불국사도 약간 비슷한 느낌인데, 당연히 오사카성 쪽이 훨씬 규모가 크다. 또 공공시설이지만 작은 규모로 여러 곳에 만들어 어느 정도 개인적인 공간을 만들어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천수각에서 내려와 그 공원들 중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친구와 같이 물을 마시며 더위를 한 번 더 쫓아내고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이게 뭐라고 기억이 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자판기에서 물을 뽑았던 것이 기억나고, 내가 동전을 친구에게 빌려주고 친구가 뽑아왔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물을 뽑으러 간 친구를 기다리며 오사카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사진을 찍어줬었고, 나랑 친구도 찍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사진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들이 소중한 이유를 거창하게들 설명하지만 나에게 사소한 것들은 그저 사소한 정도로 소중하다. 사소한 정도로 소중하다는 것은 그것이 삶의 원리를 깨우치게 해주거나, 대단한 가치의 발견을 추동하지는 못하지만, 그저 언젠가는 잊혀져버릴 수도 있는 추억들과 기억들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이다. 결국 그 자체가 소중하다는 말이다.
도쿄에서는 아사쿠사 신사에 갔다. 도착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우리는 정말 여기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같이 간 누나의 뒤통수에도 초점을 맞추지 못할 만큼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황당했다. 이 좁은 거리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유명하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했을 줄이야. 사실 뭐 사진을 찍을 생각만 아니었다면 나도 그저 괜찮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땐 사람들을 담고 싶지가 않았다. 조금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뭔가 있겠거니 하면서, 열심히 아사쿠사 신사을 향해 갔다.
지나가면서 보니 그래도 이곳저곳으로 숭숭 빠지다 보면 재밌어 보이는 길들이 많았다. 좁고 미로 같은 길들이 얽혀있는 느낌이었는데, 사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디든 똑같아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사실은 여러가지의 주제로 몇몇 거리들을 꾸며놓은 것이 흥미로워 보였는데 말이다. 여튼 점심시간에 가까워졌으니 곧 사람들이 빠지지 않을까 해서, 아사쿠사 신사부터 제대로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도 배가 고픈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누나와 나는 맛있어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캐치하고 돌아가는 길에 먹기로 했고, 그래도가 무색하게 까먹었다. 그래도 나중에 길거리에서 비슷해 보이는 것을 사 먹었다. 근데 아마 우리가 사 먹은 곳이 더 맛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생각보단 오래 걸어서야 신사에 도착했다.
세상에, 당연하지만 여기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누나와 나는 솔직히 별로였다. 우리는 향 피우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도 않고, 신사가 주는 분위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제대로 조사도 않고 찾아와 놓고 별로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변명하자면 이렇게 그 분위기가 세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여기가 야스쿠니 신사는 아니지만, 신사는 신사니까, 혹 우리가 아무런 역사적 지식없이 찾아온 이 곳이 야스쿠니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는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검색했을 때 그런 말들을 못봤으니 생각해보면 결국 걱정할 필요는 없는 곳이었지만 오사카성이 그랬듯 일본의 전통적인 장소에 가면 이런 것들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참 불편하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북적대는 곳에서 무엇을 바라고, 빌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들 정도는 아닌 정도의 놀라움을 느꼈다.
하지만 사원 옆에 서있던 이 5층탑은 꽤 볼만했다. 5층탑의 높이도 이 정도의 위압감을 주는데, 황룡사 9층 목탑이 화재로 소실되지 않고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경주박물관에서 일할 땐 거의 매일 황룡사 터를 지났는데 그때마다 너무 아쉬웠던 것이 기억났다. 물론 이 마음도 무슨 절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깊이있는 고민을 통한 것도 아니고 단순한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런데 많은 문화재들 중 황룡사는 왜 복원작업이 아직까지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여튼 그땐 사진의 탑 이름도 몰랐지만, 923년에 처음 지어진(물론 그 모습이 지금까지 보전된 것은 아니고) 이제와 찾아보니 관음당이라는 이름의 탑이라고 한다.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건데, 지금은 또 전면 공사에 들어가 천막으로 덮여 2017년까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일본 여행 갔을 때 타이밍이 안 맞아 보고 싶었던 것을 보지 못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 흐뭇한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맨 꼭대기 층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사리 일부가 있다고 하는데, 불교도가 아니라서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우리가 너무 정신없었던 탓도 있지만, 이 아사쿠사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책자를 찾지 못해 가봤음에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게 아쉽다. 물론 알아뒀더라도 기억을 못 할 테지만. 기억력에 대해 생각하니 떠오르는 것이 또 있는데, 일본어를 발음할 줄만 알기 때문에 이런저런 안내문에서 무언가를 읽더라도 머리만 아프다는 게 참 억울했다. 학교에서 배웠다지만 그래도 몇 년간 배운 게 몽땅 날아가다니. 한심한 기억력은 언제나 좋을 게 없다.
그리고 역시나 일본스럽게 그 주변을 또 열심히 매만져놨다. 주변은 정원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중국식 정원, 일본식 정원하면 느낌이 확 오는데, 한국식 정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대충 뭉그러뜨려서 얘기하면 중국식 정원은 나라 규모답게 거대하고 웅장한 느낌이라면 일본은 아기자기하고 소박하다. 하지만 한국식 정원은 이미지보단 개인적으로 안압지(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바뀐 지가 한참이지만 경주에 살면서 평생을 부른 이름에 정이 붙었는지 안압지가 더 좋다.)가 먼저 떠오른다. 안압지는 연회장의 개념이 더 큰 것 같지만, 어쨌든 그 안에도 정원이 있으니 생각해보면, 그냥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에 정자 몇 개를 배치한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안압지에 설치된 조명이 빛을 뿜을 수 있는 밤에나 황홀하게 아름다웠지, 낮에는 텅 비어있다는 느낌이 강해 뭔가 별로였다. 안압지가 실제로 정원으로써 기능할 때 야경은 없었을 테니.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비슷한 느낌으로 설명하는 사람의 글을 찾을 수 있어서 신기했다. 아래 링크에서 한국식 정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국적 정원은 인공미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적인 요소들을 살렸고, 주변과 차단되는 품속의 정원같은 느낌보다는 산과 같은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는, 즉 중국, 일본 중 어떤 곳보다 자연적인 방식을 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문화재라는 개념이 인공적 특성이 포함된 어떤 것을 말한다는 이유로 자연스러운 한국의 정원이 많이 훼손되어 한국식 정원이라고 떠올릴만한 무언가가 만들어지지 못했단다. 정원의 한자어를 검색해보니 '뜰 정'에 동산 '원'이다. 뜰과 동산이라는 정원에 굳이 인공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특색이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안압지 정원이라고 해서 딱 그곳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나의 좁은 시선은 주위의 산과 하늘로 넓어졌어야 했다.
고지도를 통해 본 서울지명연구
새로운 복원 방향을 위하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47553&cid=58174&categoryId=58174
왕은 지배층 중에서 이동이 가장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왕이 사는 궁궐 안에는 밖을 나가지 않고도 왕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심신의 피로를 풀며 즐기기 위한 정원도 그중의 하나였으며, 실제로 경복궁 · 창덕궁을 비롯한 서울의 중요 궁궐 모두에 인공정원이 조영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공정원이라 하더라도 한반도 이외 지역의 인공정원에 비하면 인공적인 가공을 가한 것이 상대적으로 훨씬 적으며, 인공을 가했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훨씬 단조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공을 가하지 않은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해 개인 집, 다리, 도로 등으로 전용되었고, 그 결과 자연정원으로서의 모습이 거의 상실되었다. 인공이 가해진 것만 문화재로서 취급했기 때문인데, 외국의 인공정원은 모두 인공이 가해진 것이기 때문에 전체가 보호되는 것과 대조되는 현상이다. 정자는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던 명승도 실제로는 외국의 인공정원과 거의 같은 역할을 하는 진짜 자연정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이 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다수가 파괴되었다. 한국적 정원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와 같은 정책의 결과 서울에는 정원이 거의 없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찝찝함을 남기고 누나와 나는 식사를 하러 갔다. 맛집을 찾아다니진 않지만 여행을 계획할 때 아사쿠사에 대해 알아보려다가 신사의 정문(?)에서 가까운 곳에 소바 장인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정보가 얻어걸렸다. 거의 모든 일식을 좋아하고 면요리 중에서는 라멘보다 소바를 좋아하는 나는 한창 여름인 때 소바를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서,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누나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가게 바깥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장인의 소바를 먹는 기쁨과, 지독스런 햇빛에 내 온몸을 맡기는 고통 중 어느 것이 더 큰 지 재봤는데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누나와 고심 끝에 상의한 결과 이 더위에, 이 인파에 다른 곳을 돌아다녀봤자 거의 비슷할 것 같으니 차라리 그렇게 맛있다는 소바를 한 번 먹어보자 결정했다. 경주에서도 맛집으로 소개되어 줄이 늘어진 밀면집 바로 옆에 있는 인기 없는 밀면집으로 향하는 나지만 여행이니만큼 줄을 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줄이 빨리 줄어 들어서 얼마 간 기다리니 곧 우리 차례가 됐다. 먼저 메뉴를 고르라고 하기에 이것저것 많은 것 중에 제일 간단해 보이는 것을 시켰다. 장인이라면 기본기가 아주 탄탄하겠지! 하면서.
그렇게 나온 소바가 바로 이것이다. 맛있긴 맛있었는데 장인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서 맛있게 느낀 것인지 진짜로 맛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안 먹던 평양냉면을 먹은 느낌이었는데, 가격표를 보니 15,000원이 적혀있고 한우로 우려낸 육수를 사용했다고 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맛있다고 느껴야 될 것만 같은 그런 맛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밋밋하다는 누나가 남긴 소바까지 주워 먹으며 '맛있는데 왜 그래?'라는 말로 누나의 저렴한 입맛을 비웃으며 나의 저렴한 생각을 옹호했다. 그래도 맛없진 않았다. 워낙 맛이 단순하긴 했는데, 들어보니 그게 원래 전통 소바의 맛이라고 한다. 그리고 면이 뭔가 설익은 느낌이었다. 왜 파스타도 면을 설익혀야 제대로 된 요리법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딱딱한 면이 훌렁훌렁 넘어갔었다. 또 소바마니아로서 전통 소바의 맛을 느껴봤으면 뭐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지금 가서 먹어도 똑같은 맛에 똑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 분명하지만 또 똑같은 말로 나를 합리화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니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유명한 식당도 유명한 관광지와 마찬가지다. 한껏 기대에 차있다가 실망을 한다. 그리고 실망을 합리화한다. 합리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더 좋은 핑곗거리를 찾아보지만 한계에 다다르고, 만약 찾는다고 해도 그것은 합리화일 뿐이다. 그럼에도 유명한 곳을 찾아가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 기대때문이다. 결국엔 실망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고 기억도 하지만 기대를 가지고 어떤 곳을 찾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설레는 일이다. 결과보단 과정이 더 길다. 운이 좋다면 결과까지 즐거울 수 있으니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그 과정에서 한껏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보다 즐거운 선택일 것이다. 결과의 여운은 생각지 않기로 하자.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 않나. 그거랑 다를 바 없다. 그냥 모든 것을 뻔히 그려보면서도 가게 되는 것이 유명한 곳들이고, 그 기대는 가끔 기대이상으로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