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만큼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수도, 익숙할 수도 있다.
누나와 난 도쿄타워에서 가깝다는 역 출구에 내려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그러다 저녁을 먹기 위해 불을 켜고 있는 식당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으나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어느샌가 도쿄타워가 목적지인 사람들을 위한 표지판도, 안내문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걸음보다 빨랐던 시간 덕에 방황하기를 그만두고 일단 도쿄타워를 향해 걸었다. 다행히 도쿄타워는 어디서든 보일만큼 충분히 높았다. 우리가 걸었던, 도로 옆 그 좁은 길은 여행자들을 위한 길이 아니었다. 그 길을 걸으며 스쳐 마주한 사람들 역시 우리 같은 관광객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남들보다 조금 늦게 하루를 끝내고 돌아가는 누군가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후련해 보이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지쳐 보이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무덤덤해 보였다. 24시 편의점에서 일해야 하는 직원과 도로가 한산한 틈에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처럼 이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양 옆으로 보이는 것들도 아파트, 편의점 따위의 것들이었다. 그 곳은 일상의 공간이었다. 지금에서야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는 서로 길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끄집어내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그 짧지 않았던 시간 동안 몇 마디 나누지 않았다. 나는 중간중간 사진을 찍으며 무던히 걸었고, 누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잠잠히 내 옆에 있어줬다. 아마 누군가의 일상이 스며있는 그 길의 가장 이질적인 부분이 되어버린 우리가 느꼈던 어색함과 어둠이 주는 고요 덕에 우리는 그저 떠오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나는 뭐 대단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았다. 낯선 곳에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누나 덕택에 가이드의 역할도 겸해야 했던 나는 도쿄타워에 언제쯤 도착할지, 도착해서는 누나 사진을 어떻게 찍어줘야 할 지, 배가 고픈데 주변에 식당 하나쯤은, 아니 도쿄타워를 바라보면서 간단히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정도는 있겠지, 혹은 도쿄타워 안에 영업 중인 식당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방금 손잡고 횡단보도를 뛰어가던 커플이 참 좋아 보이네. 하는 사소한 생각들이 지극하게 떠올랐다. 문득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도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손꼽히는 도쿄타워 주변을 걷고 있는 우리 주변에는 그저 일상적인 풍경들만 맴돌고 있었다. 그제야 나도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자에 더 가까운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단순히 도쿄타워를 보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도쿄타워가 그 주변에 어떻게 스며들어있는지 상상했다. 보지는 않았지만 영화 '도쿄타워'에서 주인공이 끝내 어머니와 같이 가보지 못한 도쿄타워를 보며 슬퍼하듯, 누군가에게는 아릿한 감정을 안겨줄 수도 있는 무언가 같았다. 누군가는 도쿄타워를 등지고 기댄 채 하루를 마무리하는 맥주를 마실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도쿄타워를 보며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고.
그렇게 걷다보니 도착한 도쿄타워 역시 고요했다. 유명한 관광지니까, 야경이 멋진 곳이니 늦은 시간에도 시끌벅적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도쿄타워 주변은 밤에 잠겨 있었다. 우리같은 관광객도 몇 없어 보였다. 도쿄타워 내부는 아직 열려 있었지만 드나드는 사람은 화장실이 급한 사람들뿐이었고 도쿄타워 앞 간이식당만이 그나마 활기를 띠고 있었다. 길을 지나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처럼 도쿄타워를 무심하게 한 번 올려다 보고 다시 발걸음을 떼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단순한 약속 장소인 사람도 있었으며, 어떤 이에게는 분위기를 내고 싶은 밤에 때때로 찾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보였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렇게 보고 싶었다고 말할 수도 있고 결국엔 그렇게 보고 싶어서 그렇게 봤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때만큼은 정말 그렇게 보였다. 도쿄타워는 사소한 일상의 풍경 중 하나였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그 높이와 화려한 불빛에 감탄했지만 부풀었던 감정은 이내 사라졌다. 그곳에 있던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쿄타워는 어둠 속에서 생생히 빛나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모습을 최소한으로 드러내고 있는 존재였다.
나에게는 한껏 기대를 품게 했던 도쿄타워가, 익숙한 누군가들에겐 그저 일상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새삼스러웠고 부러웠다. 유난스럽지만 그래서 나도 도쿄타워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그들이 도쿄타워를 스친 순간들을 모은 시간만큼 도쿄타워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나도 그 속에 녹아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누나에게 주변에 편의점이 있는지 찾아보자고, 대충 끼니를 때우고 도쿄타워가 보이는 어딘가에 앉아 맥주나 마시자고 말했다. 작은 공원처럼 마련된 곳에서 그렇게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나는 도쿄타워를 계속 쳐다봤다. 그런데 역시나 안될 일이다. 경험의 밀도는 그렇게 쌓이는 것이 아니니 당연하다. 그래도 억울했다. 그렇지만 도쿄타워가 익숙한 누군가들은 나처럼 도쿄타워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없다. 나에게 도쿄타워는 그 자체로 특별하고 설레는 무엇이다. 익숙해져 버리면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함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부러워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마침 누나도 늦은 시간, 낮아진 기온에 돌아가고 싶어 했다. 나도 도쿄타워를 특별함으로 간직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여운 덕택에 누나에게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가보자고 했다. 그곳에서 건물에 비친 도쿄타워를 봤다. 도쿄타워는 진짜 그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