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좋은 단순한 이유들

마치 모든 것들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만 같아서.

by hyeon


가끔은 인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고 느끼는 곳. 도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삶들과 일상적으로 스치며 살아간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다양성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곳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때로는 자신에게도 너무나 무감하다. 그래서인지 그중에서 사람만 많고 복잡한 도시에서의 삶이 너무 갑갑하지 않느냐고, 지친다는 사람이 있다. 나도 일상적으로 삭막한 곳으로 묘사되는 도시생활에 질려버릴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4만 5천의 인구가 생활하는 작은 읍에서 군복무를 하며 그 생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처음에는 시야를 가로막는 인공적인 것들이 생략된 풍경을 보며 만성적으로 앓던 비염으로 막힌 코가 뻥 뚫릴 것만 같았다. 이제는 이곳에서 시선을 두고 싶은 곳이 없어 책이나 컴퓨터에 눈이 향하고, 가고 싶은 곳이 없어 책상에 틀어박혀있기를 즐긴다. 그래서 나는 도시가 좋다고, 도시만큼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무엇 때문에 도시가 좋으냐고 물으면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이유를 들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그냥 좋다. 이것저것에 정신없이 눈이 돌아갈 데도 많고 그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조차 쏠쏠한 재미가 있는, 세상 모든 것이 도시에 담겨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냥 좋다고 말한다. 연애감정과 비슷하다. 별스럽게 이유를 대는 것보다 그냥 좋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은 그런 감정 말이다. 그럼에도 굳이 구체적으로 어디가 좋으냐고 집어 얘기해달라던 누군가가 떠올라 오사카와 도쿄의 매력으로 대변하고자 한다.




밤이 되면 선명해지는 빛들이 좋다. 물론 햇빛만큼은 아니지만 가끔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햇빛보다 밝힐 것만 밝히려는 그 빛들에, 햇빛이 닿지 못하는 곳도 밝혀줄 수 있는 그 빛들에 더 정감이 갈 때가 있다. 그리고 빛들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목소리를 듣고 각각의 빛이 밝히고 있는 장소가 어떤 곳인지, 무엇을 말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다. 때로는 그 빛들이 모여 있는 모습 자체에 감탄할 때도 있다. 어둠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 잔잔히 녹아든 빛들도 있다.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그 빛들.




도시에서 배를 탈 수도 있다. 거센 물결을 일게 만드는 유람선 같은 큰 배들도 있고, 작은 강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작은 배들도 있다. 어느 배를 타건 풍경은 제각각이다. 저 멀리 보이는 놀이공원처럼 우리는 도심 한가운데서 뜬금없이 환상의 세계를 만날 수도 있다. 이제는 고루해져버린 환상이지만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설렐 때가 있다.




관람차를 탈 수도 있다. 천천히 돌아가는 관람차는 도시의 삶과 반대다.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가장 낮은 곳부터 가장 높은 곳까지. 다시 가장 낮은 곳으로 돌아오는 그 과정처럼 나의 삶이 조금은 차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만 같다.



우리는 아쿠아리움에 갈 수도 있다. 해파리는 바다의 반딧불이 같다는 사실을, 펭귄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간편화·효율화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때로는 거창한 생각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갖가지 음식들을 맛볼 수도 있다. 먹는 행복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도시는 갑갑한 마천루로만 가득 찬 것이 아니다. 소박한 풍경들도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어느 도시건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누군가가 널어놓은 이불을 보고 잊고 있던 빨래가 생각나고, 이번 선거에서는 누구를 뽑아야 하는지 갑자기 고민이 들기도 한다. 생각도 않다가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자판기에서 괜히 음료수 하나를 뽑아 먹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길에 그려진 낙서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골몰히 고민해보기도 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갑자기 눈에 들어온 풍경에 차를 멈추고 싶지만 그 찰나에 지나쳐버려 아쉬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도시가 좋다. 관광객으로서 바라본 피상적인 도시임에도 도시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러니 도시에 깊숙히 스며든 삶을 생각해보라. 뷔페에서 음식을 고르듯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물론 나는 일단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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