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타인에게 비친

by hyeon


많은 사람들을 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많은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고 그들 중 몇몇만이 나의 시선을 머무르게 했다. 그들 중에서도 몇몇만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나는 일본 여행에서 고작 열댓 명 남짓의 사람들을 봤다. 사실 그 사람들을 봤다고 할 수도 없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까지 끌어 모아 봐도, 내가 그들에게 머물렀던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2-3분에 지나지 않는다. 짧은 만큼 함축적인 시간도 아니다. 그들과 마주한 적도, 시선이라도 흘긋 마주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가 뒷모습이다. 그러니, 나는 그 사람들을 ‘봤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스친 ‘인연’이었다는 말도 경험의 과장이고 미화다.


나는 그들의 찰나에서 내 머릿속 이미지들을 훔쳤다. 나의 시선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적인 시간 속에 있던 그들이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보이고 있는 때, 나는 그 우연한 순간을 찍었다. 나의 생각이 투사된 순간이다. 그 생각은 지극히 개인적인 만큼 사소하기도 하다. 그러니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사진이 아니라, 나 자신의 단면이다. 내 사진이 그들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했음에도 내 사진이 단순한 허상이 아닌 이유다. 나의 여행은 그렇게 이기적이다. 누나에게 그랬듯 나는 모두에게 이기적인 여행을 한다. 나 아닌 모든 것들을 찍으면서도 신경은 온전히 나 자신에게만 곤두서 있다. 여행 중에도 무의식적 자기애가 끊임없이 발현한다. 그래서 내 모습이 없는 사진 속에 '나 자신'이 있다. 그렇다고 타자가 배제된 사진이라는 말은 아니다. 나의 사진들이 그들의 본모습이 아닐지언정, 진실은 찰나에, 무방비 상태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니까.
















1

오락실에 있는 두 남자를 순전히 자의적으로 본 건 아니었다. 오락실 바깥에서 무리 지어, 그러니까 통유리 너머로 무언가를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 현지인 같았기에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이 무엇일까, 관광객으로서 궁금했다. 두 남자는 나에게도 익숙한 DDR처럼 보이는 커다란 오락기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오락기 화면에서는 캐릭터가 같은 춤을 추고 있고, 동작의 일치 여부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고 있었다. 동작인식 오락기라니, 아직도 스틱을 사용하는 고전 게임기들로 가득한(그것이 매력이지만) 우리나라의 오락실이 얼마나 열등한지 절절히 느꼈다. 절감의 순간은 금세 사라졌고 머릿속에만 그리던 일본의 ‘오타쿠’ 이미지를 실제로 목도했다는 생각에 괜히 짜릿했다. 그들을 춤추게 만드는 노래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음악 같았다. 아마도 두 남자가 상당히 좋아하는 가수와 혹은 노래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내가 상상 속으로 그리던 이미지와 매우 흡사했다. 아니, 그들의 만들어진, 많은 이에게 학습화된 이미지와 비슷했다고 말해야 한다. 나는 그들이 춤추는 모습을 얼마간 지켜보다가, 사진을 찍고, 그들이 춤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어딘가로 향했다. 생각보다 담백했던 일본처럼 어쩌면 그들 역시 나에게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여지를 주지 않았다. 기존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 그들을 이용했다. 그들은 단지 이미지의 겉피를 강조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고, 나는 여전히 그들을 모른다.
















2

카메라를 꺼내면 부모님을 부르거나, 시선을 피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 아이는 아빠의 품에서 사진을 찍는 나를 발견하고는 슬며시 웃어줬다. ‘부모님 몰래’라는 생각에 더 재밌었을 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은밀히 아이와 내통했다는 생각에 괜히 별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들은 행복한 가족이다. 내가 여행을 갈 만큼 좋은 날, 가족끼리 수족관에 왔으니 말이다. 또, 남편은 아내의 가방을 메고 아이를 품에 안았다. 최대한 아내를 배려하는 모습이 자상하다. 수족관의 본관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부부와 나는 갈라졌으나, 나는 상상해본다. 남편이 힘에 부치는 것 같으면 아내는 물을 마시고 싶다며 가방을 달라고 하는 모습을. 아빠의 품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를 꾸짖기도 하는 엄마의 모습을. 시무룩해진 아이를 목마에 태워 헤엄치는 상어를 보여주는 남편의 모습을. 그런 남편과 아이를 위해 커피와 주스 한 잔을 사 오는 아내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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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갑자기 내리는 비에 적잖이 당황했던 때, 날씨의 변주를 즐기고 싶었지만 건강의 변주는 막아야 했다. 그 거리에 있던 모두는 뜬금없이 쏟아지는 비에 옷으로, 손으로 비를 막으며 어디론가 뛰어가거나 망연히 비를 떨어트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일회용 우산을 파는 근처의 편의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 빗속에서 유일하게 우뚝 서있었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말하자면 나의 또래인 그들은 아마도 가라오케 아르바이트생이었지 싶다. 종일을 서있어야 했는지, 모두를 당황시킨 비를 예상이라도 한 듯,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던 우산을 폈다. 여분의 우산도 잊지 않았다. 비가 오면 우산을 펴서라도 계속해야 하는 그들의 일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들도 확신하지는 못했으리라.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지도 않고, 큰 소리로 홍보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홍보판을 들고 서있었다. 이따금 서로 잡담을 나누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지루함에 대해 경쟁이라도 하듯 깊은 숨을 내쉬며, 자조하듯 빗속에서 어른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점쳐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인내하는 지금만큼의 무엇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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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주도 괜찮고 노래도 잘한다. 길거리의 웅성거림과 굴러가는 바퀴의 소리들이 음악과 조금은 부자연스럽지만 그 정도쯤은 괜찮다.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사랑에 관한 노래 같아 괜히 설렌다. 중요한 건 노래가 좋다. 괜히 바쁘던 발을 멈춰 세웠다. 그들의 나이를 가늠해본다. 내가 조금은 어리겠지만 분명 또래다. 그들의 표정을 살펴본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들어주든, 지나치든 그들은 눈을 감은 채로 노래하고 연주한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나는 무작정 길거리로 나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지. 무언가가 있다면 그들 같은 자신감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니 길거리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시 바쁘게 발을 움직이기로 했다. 신호등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괜히 뒤를 돌아봤다. 그들의 음악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했다. 조용한 숙소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려고 하니, 즐거운 여행이 우울해지려고 한다. 일단은 내버려둘 일이다. 친구가 술을 마시자고 한다. 아까 편의점에서 봤던 작은 크기의 양주가 기억난다. 종류가 많았는데 결국 앱솔루트와 잭다니엘을 샀다. 아직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5

비 같은 땀이 미끄러지는 몸에서는 활력이 넘치고,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제자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일부러 얼굴에 떨어지고 있는 듯한 빗속에서도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소박한 경의를 느낀다. 그들을 훔쳐 찍은 나의 카메라처럼 나는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엿봤다. 그들은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추운 겨울, 눈이 내리는 날에도 여전할까. 무조건 지금이 최선일 필요는 없다. 불확실한 미래라도 나는 기대한다. 지금에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다.



6

별 수 없이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정원관리사와 축축한 어깨에서 공허한 눈동자가 연상되는 교통경찰관. 두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무력해진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은 단순히 사진에 활력이 부재하는 탓인지, 실제로 단순히 찍힌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깊은 무력감을 가진 사람들인 건지, 나의 무력감이 반영된 시선이 그들에게 무력감을 덧씌워 놓은 건지, 혹은 이 모든 이유가 섞인 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나는 자신의 사진에 대해서도 명확히 할 수 있는 말들이 없는 무용한 존재가 된다. 그럴 때면 지금보다 더 무력해지기 위해서는 무력해서는 안될 정도로 무력해진다. 그렇게 사진 속 대상들도 한층 더 무력해 보인다.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 같은 마음은 불편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사진은 절대로 완성형에 도달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다. 단순히 셔터를 눌렀다고 해서 내 사진이라 부를 수 없고, 셔터를 누르는 그 찰나에 많은 것들이 생략되고 배제된다. 나는 진실을 포착하고 있다고 믿지만, 떨어져 나온 진실의 파편은 닳고 닳아 제자리에 꼭 들어맞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온전히 나의 힘으로만 완벽을 해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사진에는 진실한 무언가, 진실하다고 믿는 무언가가 담겨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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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누군가에게는 출근길인, 여행길인 아침에, 누군가는 계단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갈길이 바쁘니까. 나는 술을 많이 마셨겠거니 했다. 젊어 보이고 행색도 그리 형편없진 않았다. 역무원이 올라왔다. 그래도 누군가 걱정을 했나 보다. 그 누군가는 사진 속에 담겨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호기심과 걱정 그 중간에 있는 표정으로 널브러진 누군가를 바라본다. 그 누군가가 정신이 들었다. 그의 표정을 보니 술 때문은 아니다. 그 누군가는 역무원을 향해 고개를 들지도 못했고, 역무원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때의 상황이 민망했던 것이라면 그 누군가는 다음 열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그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가다 결국 짐을 쏟아버리고 말았다. 그때 열차가 도착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열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반대편 창문을 향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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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객으로 보이는 한 여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그녀 옆에는 김이 다 빠졌을 듯한, 더운 날씨에 이미 식어버린 듯한 콜라가 놓여 있었다. 나는 이미 두 번이나 마셨음에도 또 밀크티를 마시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밀크티에 질려버려 생수나 한 병 샀을 테다. 그러니, 나는 여행객이 아니라 관광객이다. 계획을 완성하기에 급급해 며칠을 온종일 쏘다녔다. 사진은 남았지만 사진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것에 지쳐 쉬자고, 관광 말고 여행을 하자는 다짐을 했다. 그러면서 여행을 왔으니 한국에 없는 밀크티를 마셔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입 안 텁텁함을 남길 밀크티가 아닌 입 안을 정화시켜줄 생수가 필요함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부러웠던 거다. 언제 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떠날 때까지도 가만히 앉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녀. 그녀는 아마 옆에 놓아둔 콜라를 잊은 채, 자리를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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