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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 May 16. 2017

<미스테리 트레인>

우연으로 만나 흩어지는 인연들

모든 인연은 우연이 만든다. 누구와 인연을 맺든 우연 없이는 불가능하다. 살아가며 마주 스치는 수많은 인연들 중에는 필연이라 느껴지는 인연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허나, 필연이란 단어는 운명과 어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연은 옷깃만 스치며 흩어지니. 오히려 흩어지는 것이 필연이다. 흩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다. 인연에 대해 말할 때 운명이라는 단어는 결속보다는 와해에 어울린다. 우리는 어떤 합의문의 시효가 끝나는 것처럼 자연스레 사그라지는 인연에 익숙하다. 우리가 극히 몇몇의 인연에만 절절한 이유다.      


진지하게 쓰는 글은 아님에도 진지하게 시작한 이유는 ‘인연’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무거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인연’이라는 것에 자연적인 존엄이 존재하기라도 하듯 인연을 대할 때면 사뭇 진지해진다. 허나, 우리는 ‘인연’을 조금 가볍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인연을 운명처럼 대했다간 아마 몇 년간 아무도 없는 골방에 스스로 기어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인연은 흩어지기 마련이니. 하지만 인연을 가볍게 생각하는 건 욕 들어먹기 딱 좋으니 인연이 아니라 ‘물연(物緣)’으로 말해보자.     



<MYTERY TRAIN>

가끔 되게 사소하고 보잘것없지만 따지고 보면 신기하고 기묘한 일이 있다. 며칠 전 다운로드하고 오랫동안 묵혀두던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와 <미스테리 트레인>을 연달아 보던 중 사소한 접점을 발견했다.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로큰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성공을 향한 2류 밴드의 여정을 중심으로 로큰롤 문화를 다룬 영화였고, <미스테리 트레인>은 로큰롤의 왕이라 불리는 엘비스의 도시 ‘멤피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바로 로큰롤이다. 나는 이런 우연을 만나면 왜 이렇게 신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건 운명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영화도 더 재밌다. 또 다른 공통점은 없나 싶어 영화를 샅샅이 훑어보지만 (당연히) 별 것 없다. 그래서인지 신나는 마음이 그렇게 오래가진 않는다. 사실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로큰롤을 위한, 로큰롤에 의한 영화지만 <미스테리 트레인>에서는 로큰롤이 그다지 중요한 소재가 아니다. 더군다나 두 편의 영화는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필연적으로 쪼개질 수밖에 없는 인연인 것이다. 그저 내가 우연히, 선택한 두 편의 영화가 우연히, 로큰롤이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인연은 이렇게 사사롭다. 가끔 신기하게 느껴져도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일이 아니다. 필연이라면 별 볼 일 없는 일에 감탄할 필요도 없이 직감으로 알 수 있다.     



<미스테리 트레인>의 스틸컷을 봤을 때, 자무쉬 영화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미스테리 트레인>은 FAR FROM YOKOHAMAA GHOSTLOST IN SPACE 총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다. 「FAR FROM YOKOHAMA」은 멤피스로 여행 온 일본인 커플, 「A GHOST」는 싸구려 호텔에서 만나게 된 이탈리아 여자와 디디, 「LOST IN SPACE」는 ‘엘비스’라 불리는 조나(조나는 디디의 남자 친구다), 디디의 오빠인 찰리, 그리고 윌이 주인공이다. 옴니버스 영화인만큼 세 개의 이야기는 (헐겁게)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모두 ‘멤피스’를 배경으로 하며, 세 커플 모두 똑같은 (TV도 없는) 싸구려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두 번째, 로큰롤 가수 ‘엘비스’와 관련되어 있다. 세 번째, (어딘가에 도착하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의미에서)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 각각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FAR FROM YOKOHAMA

FAR FROM YOKOHAMA의 젊은 일본인 커플은 로큰롤을 좋아하지만 각자 좋아하는 가수가 다르다. 여자(마츠코)는 ‘엘비스’를 좋아하고, 남자(준)는 ‘칼 퍼킨스’를 좋아한다. 그래서 멤피스에서 가고 싶은 곳도 다르다. 여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 ‘그레이스 랜드’를, 남자는 칼 퍼킨스가 녹음했던 스튜디오인 ‘썬 스튜디오’에 가고 싶다. 남자는 마지못해 여자가 원하는 그레이스 랜드로 향한다. 그런데 그레이스 랜드를 찾던 중 우연히 썬 스튜디오를 발견하고 그곳을 먼저 가기로 한다. 썬 스튜디오를 다녀온 뒤, 피곤해진 여자는 숙소를 찾아 쉬자고 말한다. 그들은 싸구려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시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모든 연인들이 자신과 상대방의 관계에 대해 고민한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인지, 그러니까 자신들이 운명인지 말이다. 헤어질 때는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라는 말도 참 많이 한다. 우리는 FAR FROM YOKOHAMA에서 연인이라는 ‘인연’에 대한 고민을 읽어낼 수 있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면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끌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대방도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끌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야 인연이 된다. 그러니까 연인 관계에서 (사실 모든 인연이 마찬가지다) ‘닮았다는 것’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상대방과 자신이 닮았는지, 닮지 않았는지 구분하는 것만큼 모호한 것도 없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는 로큰롤이라는 공통된 취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가수가 다르다. 여자는 적극적이지만 남자는 무뚝뚝하다. 왜 이렇게 딱딱하냐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무표정으로 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닮았으면서도 닮지 않았다. 남자는 요코하마의 건물을 60% 줄이면 멤피스와 비슷해질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은 사실상 남자가 느끼는 여자와 자신의 차이의 정도를 말하는 것 같다. 여자는 자신이 정리한 사진첩을 남자에게 보여주면서 고대 중동의 왕, 부처, 자유의 여신상, 마돈나와 엘비스가 닮았다며, 신기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솔직히 하나도 안 닮았는데, (닮았을 리가 없다) 사진만 보면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특정한 각도에서, 혹은 특정 요소 때문에 닮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따지면 세상 사람 모두가 닮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중 진짜 닮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헷갈린다. 지금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인연인 건지, 당혹스럽다. 여자에게 사진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의 기록이고, 남자에게 사진은 기억하지 못할 것들의 기록이다. 근데 어쨌든 둘 다 사진을 좋아하긴 하는 것 같다. 남자는 티셔츠를 달랑 2장 챙겼는데, 여자는 무려 100장을 챙겼다. 그런데 둘 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 같기는 하다. (힙스터들이 좋아할 정도 힙하다) 여자는 목욕을 싫어하지 않지만 남자는 목욕을 싫어한다. 그래도 씻긴 씻는다. 그러니까 그들은 인연인 걸까. 모르겠다. 일단은 하룻밤을 보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아까는 요코하마와 멤피스가 닮았다더니 갑자기 아주 다르다고 말하는 남자처럼, ‘그레이스 랜드’를 가야 한다고 떼쓰던 여자가 ‘썬 스튜디오’를 가게 돼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처럼. 말 그대로 미스테리다.      




A GHOST

로마에서 온 루이자와 디디. 두 명의 젊은 여자가 등장하는 두 번째 이야기는 루이자가 서류에 사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뒤에 보이는 관과 직원이 남편이냐고 묻는 것을 보니 아마 남편의 시신을 비행기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멤피스에서 체류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루이자는 덤덤하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여자 같지가 않다. 누군가와의 통화에선 소리까지 고래고래 지른다. 루이자는 차분한 걸까, 냉정한 걸까.     



멤피스에서의 이야기는 엉뚱하게도 루이자의 호구스러운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신문을 사러 간 서점의 주인에게 꾀여 읽지도 않을 온갖 잡지들도 함께 구매한다. 진짜 꾐에 넘어간 것 같지는 않고 귀찮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귀찮은 것으로 따지면 점원을 일일이 상대하는 일이 더 귀찮을 것 같은데 그녀는 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지 않았을까. 그리고 들어간 식당에서 기껏 사온 신문과 잡지들은 테이블에 쌓아두고 원래 가져온 책을 읽을 거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상한 엘비스 유령 이야기를 들려주며 10달러에 빗을 사란다. 루이자는 빗 값으로 10달러를 주고 꺼지라는 의미에서 10달러를 더 준다. 그렇다. 루이자는 호구가 아니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으며, 관심을 얻고 싶지도 않다. 돈으로 치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냉혈한이다. 우여곡절 끝에 저녁이 되어 거리로 나서는데, 아까 일로 기분이 상했던지 식당의 남자가 음습한 거리에서 자신을 부른다. 겁이 난 루이자는 택시를 잡으려 하지만 택시는 루이자를 무시하고 루이자는 다행히 맞은편에 있는 싸구려 호텔을 발견한다.      




호텔에 들어가 한숨을 돌린 루이자는 돈이 없어 호텔에서 쫓겨나는 디디와 부딪힌다. 마침 혼자 있고 싶지 않았던 루이자는 방을 함께 쓰자는 디디의 제안을 승낙한다. 돈을 나눠 내자던 디디는 사실 돈이 없다. 둘은 방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겉치레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녀들의 대화는 워낙에 말이 많은 디디 때문에 밤늦게까지 이어진다. 디디는 루이자가 남편과 사별한 것을 알기나 하는지 자기 남자 친구 얘기부터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까지, 루이자는 궁금하지도 않을 온갖 이야기를 쏟아낸다. 디디도 루이자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입을 쉬게 놔둘 수 없는 사람일 뿐이다. 막상 루이자가 식당에서 들었던 앨비스 유령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백 번도 더 들은 얘기라며 결정적인 순간에 초를 치는 것을 보라. 사실 루이자도 디디의 얘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냈으니 할 말 없다. 아마 디디의 얘기는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디디 먼저 잠이 드는데, 갑자기 방 안에 길을 잘못 든 엘비스 유령이 나타났고, 놀란 루이자는 디디를 깨우지만 유령은 사라진다. 디디는 쫓길 처지에 있었던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지 루이자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아침이 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디디는 조심스럽게 돈 얘기를 꺼낸다. 기차비 얘기를 하며 말을 흐리는 디디에게 루이자는 200달러를 건넨다. 사별한 남편이 늙은 부호였는지도 모르겠다. 디디를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귀찮을 뿐이다. 디디 역시 앞으로 볼 일도 없는 사람이니 체면 차리지 않고 받아 든다. 이제 루이자는 하나도 억울해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아마) 로마행 비행기를, 디디는 하나도 고마워하는 기색 없이 (아마) 니체즈로 가는 기차를 탄다. 완전히 달라 보이는 그녀들도 타인이라는 인연을 대하는 지독한 무관심이 닮았다. 같은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도 그녀들은 서로에게 철저한 타인이었다. 그녀들은 아마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서로를 잊었으리라. 인연이라 느껴지지 않는 인연은 이렇게나 대수롭지 않다.     



<미스테리 트레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하고. 영화를 해석하려는 것 같긴 한데 자의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상당하다. 정확하다. <브로큰 플라워>, <리미츠 오브 컨트롤>, <커피와 담배>, <패터슨>, <미스테리 트레인>. 이제까지 꽤 많은 자무쉬의 작품을 봤지만 초기작을 보지 않아서인지 완벽하게 이해되는 작품이 없었다. 자무쉬 영화는 언제나 난해하면서 지루했다. 난해해서 지루한 건 아니다. 언제나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고 기존 영화보다 씬(SCENE)의 흐름이 차분해 상대적으로 지루할 뿐이다. 그래도 난해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어려운 건 아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될 뿐이다.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건 아닌 것 같고, 정영문 소설 『어떤 작위적인 세계』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지만 이 장(씬)도, 이 소설(영화) 전체도 사실을 구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것은 이 소설(영화)이 뜬구름 잡는 것에 관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영화)에는 뜬구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내 생각에 자연계의 모든 것 중에서도 그 안에 핵심이 없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뜬구름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생각과 말의 어지러운 장난에 지나지 않는 이 소설이 뜬구름처럼 아무런 핵심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자무쉬 본인의 (비어있는) 무의식 세계처럼 보이는 자무쉬의 영화는 그 무의식의 단편들, 조각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프로이트적 꿈 해석을 반대했던 벤야민의 환상의 단편으로서의 꿈처럼, 자무쉬는 그 조각들 중에서 몇 개를 골라잡아 어떤 큰 범주 안에 대강 욱여넣었다. 그렇게 별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모아 허술한 맥락으로 연결한 영화가 탄생한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은 있지만 딱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다. 이야기들의 입이 모아지지 않는다. 자무쉬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언제나 그것을 보여준다. 이것저것 떠오르는 것은 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형식이 없어 보이는 자무쉬 영화는 역설적으로 형식의 없음으로 형식이 돋보이는 영화가 아닌가 한다. <미스테리 트레인>, <리미츠 오브 컨트롤>, <커피와 담배>과 같은 영화는 그 형식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자무쉬와 같은 부류의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의 경우, 자무쉬의 영화를 허황된 것으로 치부하거나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느낄 수 있다. 누군가는 기존의 관습에 빗대어 분석하려고 할 수도 있다. 분석한다는 건 정리가 가능하다는 말인데 자무쉬의 영화는 자의적 해석을 끼워 넣지 않는 이상 정리가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영화의 시작’이라는 우연으로 만나 ‘영화의 끝’이라는 필연으로 흩어지게 되는 조각들의 인연이, 바로 자무쉬 영화의 형식적 미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무쉬의 영화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무쉬의 무의식의 세계에서 보이는 대로만 보고, 생각나는 대로만 생각하며 자유로이 유영하는 것이다. 어차피 흩어질 이야기들에 굳이 연연할 필요가 없다. 영화가 끝난 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는 기존의 관습에 익숙한 사람이기도 하며. 할 말이 없다는 그의 허무한 주장이 그렇게 허무하게만은 느껴지지 않기에, 조각들의 빈틈을 메워 완결된 이야기로 정리하고 싶었다. 혹은, 자무쉬 영화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지극히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자무쉬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자무쉬의 영화에 공감하는 방법은 자무쉬와 마찬가지로 헛소리를 헛소리 같지 않게 늘어놓으려는 노력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자무쉬는 허황된 방법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과 관객들이 무의식이 서로 소통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의식할 수 없는 건 대게 뜬구름처럼 보이니까.     



LOST IN SPACE


이제 마지막 이야기를 보자. 엘비스(조나)는 오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실의에 빠져 술집에서 술을 퍼마시고 있다. 엘비스가 걱정된 에드는 엘비스와 같이 해고된 윌을 부르고 윌은 찰리를 불러 술집으로 향한다. 윌과 찰리는 엘비스가 사고를 치기 전에 차에 태워 어디론가 향하는 도중 술집에 들린다. 술을 사려던 엘비스는 자신의 흑인 친구 윌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술집 주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그들은 경찰을 피하기 위해 윌의 매형이 운영하는 호텔에 방을 얻어 술과 함께 새벽을 보낸다. 그러다 갑자기 자살 시도를 하는 엘비스를 막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던 찰리의 무릎에 총이 발사된다. 그들은 날이 밝자 호텔방을 나와 수사망을 좁혀오는 경찰을 피해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도망간다.     



「LOST IN SPACE」는 세 편의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시시한 농담처럼 느껴지는데, 어떻게 보면 <미스테리 트레인>의 전체적인 특징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엘비스’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엘비스’는 싫다면서 진짜 ‘엘비스’와 비슷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 미용사인 찰리는 밤에 손님을 받으면서 밤에는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찰리와 윌은 엘비스가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게 술집에서 데리고 나왔으면서 술집으로 가 엘비스가 기어이 사고를 치게 만든다. 사고를 치고 수습할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서 (총에 맞은 술집 주인을 버리고 도망친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후 「FAR FROM YOKOHAMA」과 「A GHOST」, 「LOST IN SPACE」 순으로 결말이 이어지는데 사실 결말이라고 하기엔 뭣한 것이 제대로 끝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모두가 어디론가 떠나지만 일본인 커플은 아직 갈 곳이 남았고, 루이자는 로마로 돌아가 남편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모르겠고, 디디는 친구와 함께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 얼간이들은 도망이나 제대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끝이 나지만 형식 없음의 형식처럼 끝나지 않은 것이다.     




<MYSTERY TRAIN>

「FAR FROM YOKOHAMA」, 「A GHOST」, 「LOST IN SPACE」 세 편의 이야기는 ‘멤피스’라는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이야기다. 결말에 가까워질 때쯤에야 <미스테리 트레인>이라는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진다. 같은 호텔, 호텔방에서 들리던 총소리, 호텔리어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블루문’, 젊은 일본인 커플과 디디는 기차에서 마주치게 되고 디디의 남자 친구가 엘비스였다는 점, 엘비스 무리가 기차와 평행선인 방향으로 트럭을 몰고 가는 것은 세 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요소들이다.   


   

결국 젊은 일본인 커플, 루이자와 디디, 엘비스, 윌, 찰리는 인연이 될 수도 있었다. 우연히 한 날 한 시에 ‘멤피스’에 있는 같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같은 거리를 지났다. 심지어 디디와 엘비스는 연인 사이, 디디와 찰리는 남매지간이었으니 굉장하진 않아도 사소한 인연임에는 틀림없다. 허나 그들은 서로 남남인 채로 멤피스를 떠난다. 모두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차와 트럭이 평행을 이루던 것처럼 그들은 아마 다시는 마주치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관객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들이 인연이 될 수도 있었음을 알지만 정작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깜깜했으니 말이다. 총소리에 한 번만이라도 놀라 방을 뛰쳐나왔다면, 잠시 호텔 로비에서 시간을 보냈다면, 호텔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면, 가까운 바에 가서 술이라도 한 잔 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자각하지 못한 채, 수많은 인연들을 흘려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몇몇 인연들은 흘려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인 커플, 궁상맞은 디디, 차가운 루이자, 바보 같은 셋과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니까. 물론 그들을 깊게 알기에는 너무 느슨한 인연이었는지도. 어쨌든 기차는 왔던 길을 돌아가고, 비행기는 이륙하고, 차는 달린다. 어디에 닿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모든 인연은 우연이니까. 필연으로 흩어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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