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글들을 감췄다.
여전히 40개의 글들이 남아있지만 다시 시작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말 그대로, 이전까지의 것들은 모두 엎어버리고,
(엎을만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들로 채우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 몇 개의 글들을 (쿨하게) 다 지웠노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름대로 치열하고 절절했던 그때의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어 비공개로 전환했다.
사실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자국이 진하게 남은 것들이라 보지 않아도 선명하니까.
그 글들은 이제 내가 추억하고자 할 때만 읽힐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그 글들은 이제 글로써 기능하지 못하는 것일까.
허나, 글이라는 것의 기능을 어느 한 가지에 묶어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찌 됐건 가뜩이나 쓸쓸한 나의 블로그에서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한 채 전시된
나의 글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다소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곧 어떤 유감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읽히기를 바라면서 읽히지 않을 몇몇의 글들을 썼다.
쓰기 전에도 알고 있었고, 쓰면서도 알았으며, 쓰고 난 후에도 알았다.
그러고 싶었다. 무엇을 하고 나면 그 무엇이 의미가 없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무의미가 어떤 의미를 만들기를 바라면서.
나의 무의미는 어떤 역설적인 전환점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무의미로 모든 의미를 감추기도 했다.
무의미는 모든 것을 우습게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는 스스로까지.
허나, 무의미는 무의미일 뿐이다. 역설이 아니라 가짜였고, 기만이었으며, 기교였다.
내가 뱉은 수많은 말들이 가짜였다는 건 아니다.
그 속에서 나는 '어떤'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물론 나를 담으려고 지극히 노력했으나, 담으려고 했던 것과는 다른 '어떤' 나들)
그저 한동안 무의미는 나에게 진실이었고, 당시의 나는 내가 믿는 바대로 진실하게 썼다.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해서, 무용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쓰고, 올린다는 것은 내보이기 위함인데, 그러니까 독백마저도 청중을 상정하는데,
나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모순에 질렸다.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미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느꼈으며,
지연한 반복에서 오는 그 지루함을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겨우 고작의 것들로 현학적으로 변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들도 있지만, 꼭 그렇게 될 필요는 없으니까.
어떤 일도 명확하고 확실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지만, -지만, -만도 자제하기로 한다
그러니깐 이제는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해야겠지.
이제껏 아무런 표정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던 일들에 대해.
어쨌건 일단은, 나의 글이 스스로에게조차 읽히지 못한다면, 그나마의 의미마저도 무의미해질 테니,
(그때는 정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글이지 않을까) '없음'을 없애기 위해서 내가 쓴 모든 글들을 없애자.
요즘 김홍중 교수님의 '사회학적 파상력'을 읽고 있다.
교양서로 읽기엔 다소 지나치게 학문적인 성격이 짙지만,
총 14개의 글을 며칠에 나눠 읽으니 부담이 덜하다.
그중에도 '생존과 탈존'이라는 공통의 영역으로 묶인 4개의 글들,
7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세대
8 동아시아 생존주의 세대의 얼굴들
9 탈존의 극장
10 진정성의 수행과 창조적 자아의 꿈
각각의 소제목들이 보여주듯, 책의 일부는 현 청년 세대의 어떤 얼굴들을 담고 있다.
더욱 정확히는 그들의 눈에 비치는 것들, 그들이 듣는 것들, 그들이 맡는 것들, 그들이 말하는 것들.
결국 그들이 느끼는 것, 그것을 토대로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것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도 아니며, '청년'이라는 어떤 세대적 집합체도 아닌, '우리'의 얼굴들이다.
혹은, 동시에 아주 개인적인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각각의 소제목들이 나 스스로가 어떤 표정을 짓게 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읽혔으며,
(물론 그 표정이 만들어지기까지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일그러짐과 변형이 있었지만)
그 과정의 귀결이 '창조적 자아'라는 꿈(혹은 환상)에 닿는다는 것은,
그의 의도대로 아주 옅은 정도를, 잠시나마 얼굴에 띄울 수 있게 해준다.
생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인 나 역시, 고고히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지리한 헬조선에서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동시에 나는 앓으며 사는 삶이 지겨워졌다.
당장에 앓을 필요는 없을진대, 나는 왜 이렇게 앓으며 사는가.
무모하게 살기로 작정을 해놓고도, 진정으로 무모하지 못한 삶에 스스로에게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는 안되기 때문일까?)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고상히 살아가기로 했다.
고상하다는 게, 그게 별 건 아니다. 더 이상 죽겠다며 곡소리 내지는 않기로 한 것, 그뿐이다.
아직 살 만하니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은 가볍게.
어쩔 수 없이 연명하는 삶을 살기엔 내가 아직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많은 것들이 남아 있으며, 많은 것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사는가. 본 적은 있지만 깊게 고민했던 적은 없다. 거울만 보고 살았나 보다.
허나, 그리 다르진 않은 것 같았다.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아침을 시작하며, 거울을 보고, 집을 나서니까.
한땐 억울하지 않으려 했으나, 이제는 억울함을 느끼려 한다.
사실 모든 것을 무의미로 치환하고자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것을 무화시킨다면, 모든 것이 사라질 테니, 억울할 일도 없을 테니, 나는 '잘 사라짐'을 택했다.
'잘 사라지는 것'이 내가 맞을 수 있는 유일한 해피엔딩,
그러니까 진정으로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그나마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말로라고 생각했다.
묵시록이 긍정이 되는 순간에, 어떤 변태적인 짜릿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책에서 말하는 '탈존'이었다.
'탈존주의는 심화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대한 자기파괴적, 병리적, 극단적 저항의 안타까운 형식이다. 존재를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최대치의 저항이지만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서는 안 되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착잡한 패배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상의 순수한 몸짓인 동시에 몸짓에 머물러버린 사상이다. 마음의 레짐으로 채 형상화되지 못한 잔해들의 이름, 폐허의 명칭이다. 신음이고, 침묵이고, 정신질환이며, 폭력의 메아리다. 관계로부터의 퇴거, 사회적인 것의 진공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고투하다가 결국 품게 된 체념의 고집스런 응결, 잘못 내려진 결단, 반복되는 실패, 언어화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상처들, 이 모두가 탈존주의의 질료다. 그것은 아우성 없이 존재를 벗어던질 것, 외피를 벗고 사라질 것을 유혹한다. 생물학적 재생산을 포기할 것, 깊은 관계도 포기할 것, 발전이나 성숙도 포기할 것을 유혹한다. 잉여적인 것에 투항할 것, 열심히 노래하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 아이를 낳지 않을 것, 사랑하지 않을 것을 명령한다. 그들은 다만, 서서히 뜨거워져가는 (혹은 식어가는) 지구와 함께 존엄한 탈존을 사고한다. 존엄한 탈존이란 포기가 아니라 최후까지 존중된 존엄성이다. 최후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탈존을 살아내어야 한다는 듯이.' (p354)
나 역시 가볍고 싶어 모든 가벼운 관계를 끊어냈고, 사랑은 불가능하다 생각했으며,
땅을 맴도는 소리를 나의 소리로, 일상적 허무를 위로로 여겼다.
가끔 느껴지는 어떤 감정의 동요에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했다.
진정한 위로를 원하면서, 진정으로 내 마음을 살펴보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스스로 그런 사람이기를 즐기기도 했다.
나는 비非인간이 되고자 했다.
인간적이지 않다면,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내가 겪을 고통 역시 사라질 테니.
나름대로, 최선의 저항이었다. 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가진 절망의 소멸뿐임을 모르지는 않은 채로.
어느새 길어져버린 이 글은, 김홍중 교수의 책을 동기로 삼은 것은 아니다.
(물론 그와 같은 예리한 누군가 곁에 있다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지만)
(누군가는 어느새 길어져버린 이 글을, 결국 희망을 얘기하는 클리셰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
이번 학기, '없는 말들'이라는 제목으로 자전적인 에세이를 썼는데,
그 에세이 안에서 '어떤 작위적인 세계'의 작가 정영문에 대해 생각하면서,
더 이상 그의 책을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끝을 맺었다.
물론 내가 그의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었는가는,
그가 어떻게 읽히기를 바랬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나는 오늘 정영문의 책을 반납했다.
이제는 그의 책을 읽지 않을 것 같다.
읽고 싶지 않다.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허나,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유보적이며, 방어적인 전환의 순간을,
그 순간에는 몰랐던 순간에 대해 나는 짤막하게나마 글로써, 책으로써 남겼다.
그렇게 끝맺고 나니, 아니 그렇게 끝이 맺어진 것을 보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것처럼, 어떻게 끝날 지도 몰랐던 글이었다)
지나고 나니 끝없는 체념과 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었다 싶다.
나의 삶에, 투쟁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어색해하지 않기로 하자.
나 역시 치열하게 살았으니, 그 정도의 단어는 스스로에게 허락하도록 하자.
글을 마무리하려니, 이런 글 역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기존의 습관에서 도진 질문이 떠오른다.
의미를 찾는 건 이제 그만하도록 하자.
모든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 의미는 찾아도 없는 것이 아니라,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회학적 파상력 책의 표지, 장민승의 <둘이서 보았던 눈>과
도재명의 '토성의 영향 아래'의 앨범 커버의 두 사진은 묘하게 닮았다.
책의 표지로 쓰인 장민승의 작품 역시 비디오 작품에서 캡처한 것이고,
도재명의 앨범 커버 역시 김유석이라는 감독의 비디오에서 캡처한 장면이다.
(허드슨강(일 필요는 없지만 어쨌거나))
'diaspora', '미완의 곡', '토성의 영향 아래' 등의 곡을 품고 있는,
한국의 어느 뮤지션이 만든 앨범이기에 당연한 일일까.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들이 보여주는 이미지가 비슷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무의식적인 '연결'을 암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기에 나 역시 그저 동떨어져 있는 존재는 아니지 않을까.
이제 누군가 물으면, 아니 언젠가, 누군가 나의 젊은 시절에 대해 묻는다면,
내 삶의 한때는 여백이었노라고, 아직 낭만을 찾아도 될 적에,
나는 무언가를 비워내기 위해 지극했었노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워냄으로써 채우고자 했건만, 비워진 곳에 채워진 것은 비우고자 했던 것의 복제품들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