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적이고 현실적인 때에 나는 사랑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처절한 절망을 제외하고 모든 것에 지극히 무감해진 때의 나는 사랑을 갈구한다. 오직 사랑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
요즘 삶의 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기대하기 위하여 노력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무엇을 기대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내가 무엇을 기대해야 하고, 기대하는 지는 잘 알고 있다. 사랑. 온전한 사랑.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유일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랑. 그래서 이제는 기대하는 동시에 체념한다. 기대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에게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사랑이 참 어렵다. 다른 많은 것들처럼 그저 열심히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확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 나 자신조차. 그리고 사람들도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진실하고 깊은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그저 사랑할만 한 사람을 사랑하고 싶고, 사랑할만 한 사람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고 싶다. 이제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모든 절망까지도 사랑 속에서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로가 꼭 들어맞는 반쪽이라 서로를 완벽하게 만든다는, 그렇게 순수히 완벽한 사랑을 원한다는 뜻이 아니기에, 내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스스로를 자책하진 않겠다. 사랑은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치환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저 단순하다. 위로. 서로의 마음이 닳지 않으면서 서로의 불행을 위로할 수 있게 하는 것.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 아마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사랑에 온전히 충만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나는 사랑을 갈구한다. 가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숭고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사랑을, 나도 생에 한 번쯤은 진실로 겪어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