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기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on Mar 25. 2020

또다시 사랑으로써

사랑이 너무나 드물어져 버렸기에, 사랑이 필요한 시대다. 적어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을 그렇게 생각한다. 이성'적'인 방식으로 분노하고 증오하는 사람들, 타자와 함께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지 않고 타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들. 그것이 다만 처절한 생존 본능에서 나오는 발버둥임을 알면서도 그에 만족하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지쳤고, 그런 나에겐 지칠 자격 조차 없는 줄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사랑이 있다면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홀로 남겨진 곳에서 안도했다.


베를린에 갔었다. 쉬는 법을 모르는 인간이라 하루종일 어딘가를 다녔지만 사실 기억하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매일 밥을 먹었고, 무언가를 보았고, 종종 커피와 술을 마셨다. 그럼에도 선명히 기억나는 몇 가지 것들. 첫 번째는 호텔에서 가장 가까웠던 지하철 역 입구에서 마주친 어떤 말, 'be more kind'. 나는 그저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지만 않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충분했을까. 그걸로 되는 것일까 곱씹었다. 화면이 꺼진 핸드폰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봤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소리내어 인사해봤다. 나에게 먼저 그렇게 해주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 그렇게 해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두 번째는 호텔 방에 있던 콘돔 포장지에 적힌 말. 'spread the love'. 스스로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정확히는 어렵다. 잘 모르기도 한다. 그래도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말은 지난 번 bon iver 내한 공연에서도 각인된 적이 있었다. 밴드의 보컬 버논은 아마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를 후원해달라는 맥락의 끝에서 'spread the love'라고 말하며 공연을 시작했다. 뭉클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이런 말은 이렇게 해야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고민해야겠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객관화된 타인의 고통 앞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