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행복
작년 7월 20일 토요일, 신랑과 나는 설렘을 가득 안고 동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우리의 8박 10일 동유럽 신혼여행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체코 프라하 -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 -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 오스트리아 비엔나
체코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한식을 즐겼다. 파스타와 볶음밥 중에서 볶음밥을 골랐고, 치킨요리와 비빔밥 중에서 비빔밥을 골랐다. 유럽에서 머물 10일 동안 한식이 그리워질 것을 알았기에 최후의 한식을 즐겼다.
그렇게 도착한 프라하. 낭만의 도시답게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프라하, 체스키 크룸로프, 할슈타트를 거쳐 비엔나로 가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각 도시의 맛집을 찾아다니고, 체코와 오스트리아에서 꼭 먹어야 할 그 나라의 음식들을 열심히 맛보았다.
그런데 호텔로 돌아오면 방금까지 불렀던 배에서 금방 허기가 느껴졌다. 배는 부른데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 혹시 몰라 캐리어에 몇 개 담아 왔던 컵라면이 우리의 허기를 채워주었다. 아마도 김치와 따뜻한 쌀밥이 그리워진 우리 마음의 허기도 함께 채워준 것이 아닐까.
결국 참지 못하고 우리 부부는 마지막 여행지였던 비엔나에서 한식당을 검색하기에 나섰다. 열흘 동안은 유럽의 음식만을 즐겨보자고 다짐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결국 한식을 찾아 나섰다. 비엔나 한식당을 검색해보니 자주 등장하는 곳이 세 곳 정도가 있었다.
그렇게 야심 차게 찾아간 첫 번째 한식당에서 우리는 매몰차게 퇴짜를 맞았다. 예약을 하지 않아 자리 확보가 안 되어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다리겠다고 하니 자리가 언제 날 지 몰라서 예약 손님이 아니면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느껴졌다. 한국 사람이 한식을 못 먹는다니.
한식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해졌다. 기필코 우리는 한식을 꼭 먹으리라. 그렇게 십몇 분을 더 걸어 마침내 두 번째 한식당에 들어섰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미 대기하고 있는 손님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대부분이 외국사람들이었다. 한식당이 외국인들에게도 이렇게 인기가 많구나라고 감탄하는 찰나 사장님으로 보이는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한국분들이세요?" 사장님이 다가와 친절하게 물으셨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식사 가능할까요?"
당연히 된다며 두 분이면 먼저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2인 좌석으로 안내해주셨다. 손님이 많아 정신이 없는 가운데 사장님께서는 직원분께 우리 테이블을 잘 봐줄 것을 당부하고 가셨다.
메뉴판을 보며 음식을 주문했고, 반찬이 먼저 나왔다. 우리는 포크와 나이프가 아닌 젓가락을 집어 들고 신나게 반찬을 먹었다. 그렇게 비빔밥과 김치찌개가 나왔고, 마치 며칠을 굶은 사람들처럼 식사를 했다.
"그래, 이 맛이야."
"맞아, 우리는 한국인이었지. 한국인에게는 한식이 최고야."
한창 식사를 맛있게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다시 우리 테이블로 오셨다. 음식이 입맛에 맞는지 여쭤보셨다. 동유럽 여행 중에 한식이 너무 생각나 한식당을 찾았고, 정말 맛있게 잘 먹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돌아서는 듯하더니 다시 사장님이 와서 여쭤보신다.
"설마, 신혼여행 온 건 아니죠?"
"사장님, 저희 신혼여행 왔어요. 지난주 토요일에 결혼했어요."
"아이참, 어려 보여서 부부인 줄은 몰랐는데. 신혼여행 왔으면 진작 말씀을 해주셨어야지."
잠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은 두 잔의 모히토를 선물해주셨다. 신혼여행에 와서는 꼭 기분을 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두 잔의 모히토를 건네주시는 사장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고, 그 미소에서 우리는 따뜻함과 한국인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식당에 들리는 수많은 손님들 중 하나일 뿐인 우리에게 식사뿐 아니라 따뜻한 정을 건네주셨다.
우리가 여행 중에 들리는 수많은 식당 중 하나일 수도 있었을 오스트리아에서의 식당.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우리에게 신혼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행복을 또 하나 선물해주셨다. 사장님이 주신 두 잔의 모히토는 비단 우리의 저녁 식사를 분위기 있게 만들어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비엔나라는 도시를, 그리고 그곳에서의 신혼여행을 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길 수 있도록 추억을 선사해 준 아주 값진 것이었다.
마지막에 나올 때 사장님께 인사를 한 번 더 드리고 싶었는데 바쁘셔서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직원분께 메모지와 펜을 얻어 간단한 쪽지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왔다. 사장님에게 받은 따스한 마음을 행복한 추억으로 평생 간직하는 한 부부로 기억되고 싶다.
낯선 땅에서 만난 따뜻한 마음의 한국 사장님. 우리 부부는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한식당 사장님을 가끔 떠올리며 그 날의 추억을 되새겨본다. 우리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로.
비엔나를 떠나기 전 우리 부부에게 좋은 추억 하나를 더 선물해주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비엔나로 여행을 떠날 분들에게 꼭 방문해보라고 추천해드리고 싶다. 그곳에서는 한식이 허기를 달래줌과 동시에 낯선 곳에서 느끼는 마음의 허기도 달랠 수 있으니.
* 저희 부부가 식사를 했던 비엔나 한식당은 das김치(다스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