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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허정 Jun 14. 2020

부침개 한 장에 추억 한 장, 그리고 사랑 두 장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시간, 밤 10시. 뭘 해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아까 먹은 저녁은 이미 다 소화가 되었고, 약간 기름지면서도 씹을 거리가 있는 그 무언가가 먹고 싶은 출출한 시간이다. 냉장고를 열고 고민 중이던 참에


"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 어때?" 신랑이 제안한다.

"완전 좋아." 나는 미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냉장고를 열어 부침개에 들어갈 재료 물색에 나선다.


오늘 부침개의 메인 재료는 부추와 오징어이다. 부추를 한 입에 들어가기 좋은 길이로 송송 썰어 반죽에 넣고, 싱싱한 오징어도 듬성듬성 썰어 넣는다. 아직 부침개 초보인지라 반죽을 할 때 비율을 맞추는 것이 큰 관문이다. 너무 뻑뻑한 것 같아서 물을 더 넣으면 묽어져서 다시 부침가루를 조금씩 더 넣는다. 그러다 보면 점점 늘어나는 반죽에 맞추어 다시 부추를 조금 더 썰어 넣는다. 그렇게 신랑과 나는 본의 아니게 배가 터지게 부침개를 먹는 날들이 종종 있다.


부침개에 넣을 부추를 썰고 반죽을 만들다 보니 대학생 때 홀로 자취하던 시절 먹던 엄마표 부침개가 떠오른다.




"여보, 우리 엄마는 부침개를 얼려서 택배로도 보내줬었어."

부추 중에서도 초벌부추에 영양분이 가장 많다고 한다. 초벌부추는 며느리도 안 준다고 할 정도로 영양분이 높다고 하는데, 매년 초벌부추가 나올 때면 엄마는 따끈한 부추 부침개를 부친다. 부침개로 부쳐 먹어야 많이 먹어진다나.


나는 대학생 때 본가인 울산 집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자취 생활을 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이것저것 반찬을 택배로 보내오고는 했다. 김치는 물론이며 몇 시간을 조려 만든 장조림, 연근 조림, 곤약무침, 미역 나물, 내가 먹기 편하도록 한 그릇 분량으로 얼려진 국들...


그중 보내 놓고도 엄마가 가장 뿌듯해 한 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초벌 부추 부침개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냉동 초벌 부추 부침개였다. 영양분이 가득한 초벌 부추를 막내딸을 빼놓고 먹기에 마음이 쓰였는지, 엄마는 정성스레 부친 부침개를 행여나 상할세라 살짝 얼려서 택배로 보내주었다. 기름을 두르고 프라이팬에 살짝 데워먹으라고 말이다.


너무나 꿀맛이었지만 딱 하나 부족했던 건, 바로 같이 먹을 가족들이 없다는 것이었을까. 엄마가 해 준 똑같은 음식인데도 100프로 그 맛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부침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의 사랑을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는 온기 가득한 음식이었다.


부침개를 부치고, 먹기 적당한 양으로 나누어 얼린 다음, 행여나 망가질까 택배 상자에 고이 넣어서 보냈을 엄마의 정성을 생각한다. 택배 박스를 열어 엄마가 보내준 반찬들을 볼 때마다,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소분하여 담으며 혼자 먹을 내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을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러면서 내 눈 앞의 반찬들이 금방 흐려진다.


지금도 엄마는 일하고 있는 딸이 신경 쓸세라 반찬통이 가득 담긴 장바구니를 현관문 앞에 슬쩍 놓고 가시며 메시지만 하나 남겨 놓는다. 집에 들어와 커피 한 잔 못하고 반찬통만 남겨두고 갔을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진다. 도리어 엄마에게 우리가 가지러 갈 테니 괜히 오지 말라고 톡 쏘고 만다. 어쩌면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그 장바구니를 보며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에, 내 마음 한 구석이 시린 게 싫어서 내비치는 이기심이 아닐까. 장바구니 속 반찬통이 쌓이는 만큼, 내 마음속에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쌓여간다. 예전에도 지금도, 엄마는 늘 자식에게 더 주고 싶어 하고. 자식은 그 고생이 마음 아파 괜찮다고, 하지 말라고 한다.



"박스 울타리가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네,
아빠가 우릴 지켜주는 것처럼."



드디어 반죽이 완성되고 부침개를 부칠 준비에 나선다. 가스레인지의 손잡이를 힘껏 돌렸는데 소식이 없다. 그때 신랑이 달려와 잠겨 있던 가스 밸브를 얼른 열어준다. '아차, 가스 밸브 여는 것을 깜빡했구나.' 내가 가스 불을 켜서 부침개를 잘 구울 수 있게 밸브를 열어 준 신랑을 보니, 엄마가 부침개를 잘 구울 수 있도록 가스버너 옆에 바람막이를 설치해주시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면 바닷가에 갈 수 있었다. 매년 여름, 토요일이 되면 아빠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가 우리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근처 바닷가로 달려갔다.


엄마는 바닷가에 놀러 갈 때면 늘 부침개 반죽을 만들어갔다. 잔파 혹은 부추를 메인 재료로 삼고, 거기에 오징어, 홍합, 새우 등 각종 해물을 가득 넣은 부침개 반죽. 나와 언니는 물놀이로 차가워진 몸을 떨며 엄마표 부침개가 얼른 익기를 기다렸다. 물놀이 후 오들오들 떨며 먹는 엄마의 부침개 맛은 그 어느 맛과도 비교할 수 없는 꿀맛이었다.


엄마는 따끈따끈하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넉넉하게 기름을 두른다. 부추, 오징어, 홍합, 새우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부침개 반죽이 프라이팬 위에 오른다. 적당히 잘 달구어진 프라이팬 위에 반죽이 올려지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효과음이 아닐까.


엄마는 부침개를 한 번 뒤집은 뒤 조금 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질 수 있도록 뒤집개로 부침개를 꾹꾹 눌러 펴주셨다. 그때 올라오는 지글지글 부침개가 익어가는 소리는, 우리가 한 번 더 군침을 삼키게 했다. 그렇게 엄마는 쉴 새 없이 부침개를 부쳤고, 접시에 올라오자마자 우리는 늘 첫 장을 먹는 것처럼 단숨에 부침개를 해치워버렸다. 엄마가 부침개를 한 장, 두 장 부칠 때마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페이지도 한 장, 두 장 채워졌다.


엄마가 부침개를 부치는 동안, 아빠는 우리가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놀 수 있도록 몽돌 해변의 위험한 돌들을 치워주셨고, 동그랗게 돌담을 쌓아 미니 수영장을 만들어주셨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요새 한창 유행 중인 프라이빗 풀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부침개를 잘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비장의 무기를 만들어주셨다. 그것은 바로 가스버너 불이 꺼지지 않도록 박스를 잘라 가스버너를 둘러쌀 수 있는, 일명 박스 울타리였다.


바닷가는 바람이 많이 불어 엄마가 요리를 할 때마다 늘 가스버너 불이 위태위태했는데, 아빠의 박스 울타리는 어떤 강한 바람 속에서도 버티고 서서 따뜻한 불을 지켜주었다. 마치 아빠가 그 어떤 세상 풍파 속에서도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지켜주듯이.


아빠가 만들어준 것은 비단 박스 울타리뿐만이 아니었다. 아내와 두 딸들이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사고, 더 안전하고 따뜻한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우리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울타리 속에서 따뜻한 불을 쬐며 있을 때는 그 울타리가 그저 당연하고, 강한 것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내가 그 울타리 밖으로 나와 차가운 바람을 마주하고 보니 아빠는 그 울타리를 지키느라 얼마나 시리고 아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아빠에게, 그리고 부모님에게 내가 그 울타리가 되어 드려야지.



"이제 제법 전문가의 맛이 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다 보니 금세 빈 접시가 보인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먹는 따끈한 부침개는 하루 동안 있었던 피곤했던 일도, 내 마음을 쿡 찔렀던 일도 훌훌 날려준다. 바삭바삭한 치킨도, 지글지글 구워진 막창도 맛있지만 내 허기진 배와 마음을 함께 채워주는 건 추억이 가득 담긴 부침개가 단연 최고다.



예전에도 맛있었지만, 이제 날이 갈수록 내 부침개에서도 '전문가'의 맛이 난다고 신랑이 말한다. 지금의 신랑과 연애를 하던 시절, 혼자 살던 신랑에게 집밥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요리를 시도했다. 그중에서 마음먹은 만큼 되지 않던 것이 바로 부침개였다. 엄마가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 했는데도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엄마의 조언대로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더 바삭바삭하게 하기 위해 튀김가루도 반죽에 섞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보았지만 엄마표 부침개 맛이 완전히 나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나의 부침개가 최고라고 말해줬던 신랑. 아마도 내가 엄마의 부침개에서 느꼈던 정성과 사랑을, 신랑도 내 부침개에서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이겠지.


신랑과 부침개를 먹으며 그 날의 추억들을 이야기해본다. 부침개에 스며든 엄마의 사랑 덕분에 나는 객지에서도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힘들었던 그 시간들을 씩씩하게 잘 보낼 수 있었다. 엄마가 해 준 음식을 먹으며 몰래 눈물을 훔치던 기억도, 어린 시절 물놀이를 하다 덜덜 떨며 먹었던 따끈한 부침개의 기억도 이제는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나에게 부침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추억과 사랑의 상징이다. 어릴 적의 우리 가족들에게는 추억을, 혼자 살던 막내딸에게는 사랑을 채워주던 부침개. 이제는 어른이 되어 한 남자의 아내가 된 막내딸이 신랑을 위해 사랑을 가득 채운 부침개를 부친다. 어쩌면 이 부침개도 훗날 떠올렸을 때 추억이 가득한 부침개가 되어 있겠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수도 없이 많은 부침개를 부쳤을 엄마에게, 그리고 그 부침개를 부칠 수 있도록 옆에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준 아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오늘도 부침개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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