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찾아온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객
신랑은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가족이다. 우리는 부모님과 형제, 자매를 선택할 수 없고, 내가 훗날에 낳을 나의 자식조차도 선택할 수 없다. 유일하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배우자이다.
앞으로 나에게 남아 있는 모든 인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랑을 만나기 전 수차례 소개팅을 하면서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겠구나, 그러니 나는 마음을 접고 그냥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께도 몇 년간은 결혼할 생각이 없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보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그 선전포고가 무색하게도, 나는 곧 신랑과 만나게 되었다. 소개팅으로? 절대, 그럴 리 없었다. 여러 차례의 소개팅에서 나에 대한 소개조차 지칠 무렵, 나는 소개팅 휴식을 선언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랑과 나는 직장 동료였다. 하지만 서로 오고 가며 어색하게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다. 그러던 2월의 어느 날,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첫 조카의 유치원 졸업식이 있어 내가 졸업한 곳이기도 한 유치원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 신랑이 있었다. 무슨 일로 왔냐고 하니, 신랑의 첫 조카 또한 그 유치원에 다녔었고 졸업식을 보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조카들이 같은 유치원에, 같은 반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우연이었다.
겨울의 우연한 만남 후에도 우리가 바로 연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구가 태양의 반대편으로 가서 여름을 맞이할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다시 마주 앉게 되었다. 어떠한 큰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시나브로 사이가 가까워지게 되고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퇴근 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아마도 내가 신랑에게 마음을 열었던 이유는, 수많은 소개팅에서 했던 나의 외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내 마음속 안에 있는 그 이야기들을 꺼내 주고 또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나는 시간이 쌓이고, 함께 오고 가는 대화가 쌓여갈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맞는 배우자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더라도 떠나지 않고 나를 평생 지켜줄 사람, 힘든 오르막길에 있을 때 나의 짐을 기꺼이 나눠 줄 사람, 그 사람이 되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결혼을 하고 살아보니 나의 확신대로 신랑은 크고 작은 일에 늘 힘이 되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작은 일상 하나하나에 신랑은 스며들어 있다. 크고 거창한 것보다, 작고 소소한 일상을 함께 즐기는 신랑이 내 옆에 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다.
그리고 가장 고마운 것 한 가지, 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주는 것이다. 나는 가끔 신랑에게 묻는다. "혹시 나 시끄러웠어?" 그러면 신랑의 대답은 늘 "아니, 괜찮아. 좋아."이다. 평소 과묵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했던 신랑이기에 혹시나 내가 너무나 수다스럽진 않았을지, 집에서도 혼자 노래를 하고 춤을 춰대는 내가 너무 방정맞아 보이지나 않을지 걱정인 나는 늘 질문을 한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그 또한 너의 모습이고, 내가 너를 선택했기에 괜찮다고 한다. 이제는 나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고, 내가 만들어 부르는 자작곡을 행여나 잊을까 녹음까지 해 주는 신랑. 그런 신랑이 너무나 고맙다.
그렇기에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른 이 가족이 너무나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감히 말해본다.
내 인생에 찾아온,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객. 앞으로도 지금의 마음을 늘 간직하기를.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의 방문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