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허정 Sep 01. 2020

수많은 여름밤은 지나갔지만 우리는

그 해 여름, 우리는 정말 많은 걸음을 함께 걸었다. 퇴근 후 가벼운 맥주 한 잔과 함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여름밤이 선물해주는 싱그러운 풀 냄새를 맡으며 걷고 또 걸었다. 그 시간들은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2년의 시간이 지나버린 게 무색할 정도로 그 날의 공기와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신랑과 나는 막 사랑을 시작할 무렵, 요즘 말로는 썸을 타는 기간 동안에 정말 많이 걸었다. 같이 보낸 시간이 길든 짧든 헤어짐이 아쉬워 이야기를 하며 걷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그때는 피곤하거나 다리 아픈 것 없이 그 긴 거리를 걸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함께 걸었던 걸음만큼 우리 둘만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시간, 그때로 우리를 마법처럼 뿅 하고 데려가 주는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초록빛 가득한 여름 풀 냄새, 또 하나는 그때 우리가 즐겨 들었던 어반자카파의 '여름밤에 우린'이라는 노래다. 몇 초 안 되는 노래의 도입 부분만 들어도 우리는 그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우리를 추억한다. 2년이 지나 이렇게 결혼을 하고, 같이 미래를 꿈꾸는 사이가 될 거라고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그때. 언젠가는 지금의 우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그 모습에 가까워져 있다.


계절이란 참 신기하게도 때가 되니 그 계절의 향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너무 더워서 에어컨 없이는 잠도 못 이루는 밤이 허다했는데, 어느새 성큼 다가온 가을을 알리듯 어젯밤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무더운 여름날들은 이제 우리를 떠나가지만, 그 여름날에 느꼈던 우리의 마음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다가올 많은 여름날에도 우리는 그 해 여름을 추억하겠지.


그때의 노래와 그때의 초록빛 여름 냄새가 우리를 그 시간으로 데려가 주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신부가 결혼식 날 절대로 보면 안 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