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김밥은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는 별식 중 하나였다. 국민학교 소풍날. 운동회날과 같이 어떤 큰 행사가 있는 날에 엄마는 김밥을 맛나게 싸주었다
엄마는 늘 돈을 벌기 위해 막일도 마다하지 않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놓고 일하러 나가는 억척같은 싦을 살아가는 중에도 갖은 정성으로 김밥을 싸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소시지 한 줄. 단무지 한 줄. 오뎅도 넣고 계란도 넣었다. 시금치나 야채도 넣어주셨지만 늘 우리는 그 시금치만 골라 빼고 먹었기에 언젠가부턴 시금치가 빠진 것도 같다.
낮엔 일하고 저녁에 들어와 다음날 소풍 가서 먹을 김밥을 싸주던 엄마 옆에서 그날 저녁은 동생이랑 배 터지게 김밥을 먹던 기억... 그 기억에 김밥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분명 팽팽하게 잘 말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깨소금까지 듬뿍 뿌려 가져간 김밥 도시락은 다음날 소풍 점심시간에 열어보면 죄다 옆구리가 터져 있었다.
잘 사는 애들의 도시락 김밥은 예쁜 모양 그대로 흐트러짐 없이 곱게 알록달록 소고기도 들어가 있었는데, 울 엄마가 싸 준 김밥은 옆구리가 터져 속살을 드러낸 채 모양이 헝클어져 있었다. 그땐 아침에 말아서 가져온 게 아닌 엊저녁에 말아두었기에 터지는 줄 알았다.
이러한 이유. 엄마가 싸준 김밥만이 처음과 달리 시간이 흐르면 옆구리가 터지는 이유에 대해선 아주 나중에 철들고 애인도 생기고서야 알게 되었다.
울 엄마는 맛있는 김밥을 싸주기 위해 김을 한 장 한 장 정성껏 구워서 싸주고, 참기름도 듬뿍 발리 주었는데 요리를 배우지도 못했고,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엄마는 몰랐기에 '김밥은 生 김으로 싸야 하는데 맛있어라고 구운 김으로 싸주다 보니' 처음 김밥을 쌀 때는 모르지만 시간이 좀만 지나면 옆구리가 터지는 거였다.
하지만 난 결혼 후 신혼시절에 간혹 집사람에게 부탁해 김밥 재료를 준비 후 일부러 마트에서 구운 김을 사가지고 와 어렸던 애들과 같이 집에서 즉석김밥을 말아먹곤 했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 소세지도 2개 넣고, 계란과 단무지 듬뿍, 맛살과 어묵 넣고, 야채는 빼고 팔뚝 굵기만 하게 김밥을 말아먹으며 평상시 공깃밥의 몇 배를 먹으며 즐거워했다.
이젠 그 옆구리가 터지는 김밥을 말아줄 엄마도, 그 김밥 재료를 준비해 줄 집사람도 없기에 내게 그때의 김밥은 엄마와의 추억, 그리고 좋았던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김밥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나고, 그 김밥 한 줄을 맛나게 먹으며 행복해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왜 내가 가져간 김밥만 옆구리가 모두 터져 버렸는지 그때는 몰라 (소풍 가서 같이 김밥 도시락 먹을 때 그 감정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내 도시락 김밥의 모양을 부끄러워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애인이 생기고 그녀가 싸 온 김밥을 먹었을 때었는지 아니면 어느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을 때였는지 모르겠지만 울 엄마의 김밥 맛과는 좀 다르다. 김이 질기다고 말하는 내게 김밥은 生김으로 싼다는 걸 처음 알려주었을 때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