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다.
긴 시간 머물렀던 곳에서 떠나간다.
6년 5개월. 제주라는 섬에 여수에서 밤배를 타고 왔던 때처럼 나는 지금 제주항에서 완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차량 대기 줄에 서있다.
어젯밤에는 밤새 숙소에 있는 것들, 사무실 책상에 있는 것들을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없는 듯 살았는데도 산타페 운전석에 운전할 공간만 제외하고 빈틈없이 짐들로 채워졌다. 공극률 0%.
왜 난 이렇게 버리지 못할까.
버리고 나면 잊어지는데 아등바등 먼지 한 톨까지 챙겨 왔다. 차 문을 열면 와르르 쏟아질 정도로 차량의 빈틈. 구석구석에 끼워 넣고 쑤셔 박으며 방은 비워지고 차는 채워졌다.
다 채우고 보니 「「없어도 그만인 것들뿐인데... 」」 아마도 난 욕심이 엄청 많은가 보다. 이렇게 사무실에도 방에도 내 흔적이 하나 없게끔 챙기는 건 나의 욕심 때문인지 아니면 소멸하기 위한 준비인지...
2012년 서울에서 떠나올 때 목적지는 전북 김제였고
김제를 떠날 때 목적지는 전남 광양이었다. 광양을 떠날 때 목적지는 제주 서귀포였고, 지금 다시 제주도를 떠나는 나의 목적지는 서울이다. 결국 돌고 돌아 서울에서 가장 먼 서귀포까지 갔다가 한방에 서울로 Return 하고 있다.
마치 Reset 된 것처럼
어제 누군가 내게 물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무덤덤] 생각해 보니
서울을 떠날 때와 달리 다시 서울로 가는 건 내 삶의 주거지를 바꾸는 게 아닌 그냥 일터가 옮겨줘서 옮기는 것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 살고 싶어 서울로 가는 게 아닌, 제주 서귀포에 살고 싶어 서귀포로 온 게 아닌 단지 일터가 여기여서 서귀포에 살았기 때문이란 생각했다.
2026년 01/01 첫날 나는 배를 타고 제주도를 떠난다.
떠나는 내 차에 가득한 이 짐들을 이젠 모두 없애는 2026년 되었으면 한다.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밥그릇과 숟가락이면 족한데. 그것마저 이사가 아닌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갈 때는 고스란히 두고 갈 테니...
마음에 담아두는 모든 것들도 비워내고
내 거라는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비워내는 그런 삶을 사는 2026년이 되길 소원한다.
소멸
아무것도 없는
있었다는 기억조차 없는
그렇게 난 소멸의 꿈에 맞춰 2026년을 살아가려 한다.
매 순간 그 상황에서 필요한 삶을 살며 어딘가로 또 떠날 땐 이삿짐이 전혀 없는 삶을 목표로 살아가려 한다.
가져갈 것도 가져가야 할 것도 흔적도 기억도 없는 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