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다가갔다면

미소

by 허중매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낯선 곳이 주는 신선한 자극.
하지만, 그것은 차가움이 아닌 정겨움이었다.


그곳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여유와 미소를 지닌 이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타이베이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걸어간다.
어디까지? 타이베이까지.
숙박비 0원.



이유가 뭘까,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날 잘 곳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먹을 것이 없다고, 잘 곳이 없다고
‘한 번만 도와달라고.’

반응은 반응하는 이 자유이다.
좋든 안 좋든, 우리는 타인과 교류할 수밖에 없다.

‘교류’

나는 96년생이다.
나의 학창 시절, 이웃집은 나의 놀이터였다.
엄마가 일을 나가면 이웃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그랬었다, 그땐.’

옆집, 윗집의 소음이 심하면 경찰에 신고한다.
생선을 구워 먹어 비린 냄새가 진동하거나,
복도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그들을 경계한다.

교류가 단절된 사회,
이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Day 1

먼저, 정확한 지명은 글에 남기지 않을 계획이다.

타이베이 공항에 새벽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고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동쪽으로 2-30km를 걸었다.
목적지를 특정하지 않고, 해가 지기 전에
숙박할 수 있는 곳을 구하는 것이 목표이다.


나는 기차역 로비에서 잘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서, 편의점, 기차역 직원분들과의 소통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나를 신기해했다.
그럴 만도 하다. 그곳은 관광지가 아니었기에.
그 이외에도
도로를 걸으며,
식사를 하며,
많은 이들의 미소를 감상했다.
그리고, 그 감상은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Day 2

기차역에서 자는 것이 처음엔 무서웠다.
‘누군가 나를 죽이러 오진 않을까.’
결과적으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세면세족을 하고 물을 채웠다.
들었던 생각은,
‘이분들의 호의를 권리인 줄 알고 행동하지 말자.’

자신감이 생겼다.
어디에서든 잘 수 있다는.
힘차게 동쪽 해변가를 거닐었다.


두 곳이 나의 뇌리에 남는다.
노인분들의 삶의 터전인 선착장.
활력이 넘치다 못해 터지는 대학교.


둘 다 좋았다.
활력이 넘치는 이들도,
애잔한 눈빛의 노인들도.

오후 5시.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
이때가 되면 드는 생각은,
‘오늘은 어디서 잘 수 있을까?’


운이 좋게 학교 강당에서 잘 수 있었다.
그들은 미안해했다.
차가운 맨바닥에서 자게 하는 것을,
더 좋은 공간을 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다.
그들의 표정을 봤다.
진심이었음이 느껴졌다.

할 말을 잃었고,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이 글의 제목은,
‘먼저 다가갔다면’입니다.

저의 서울살이는 외로웠고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미소를 잃었고,
이것이 타인들의 미소 또한 잃게 만들었습니다.

‘먼저 다가갔다면’
내가 먼저 그들에게 미소를 머금고 다가갔다면,
결과가 달랐을까요?

지금은 확신합니다.
‘네, 결과는 달라졌을 겁니다.’

이 글이,
극도의 긴장과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에게 진정 있게 다가왔으면 합니다.


글로 담지 못한 현장의 생동감은 유튜브에 남겨놨습니다.

https://www.youtube.com/@heojungm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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