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카드가 가르쳐준 어른의 조건

작은 행복의 철학

by 헤올



화요일 점심시간이었다.


회사 후배들과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무심한 일상의 순간,

3명의 남자 후배들이 갑자기 커피숍 옆 작은 가게로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포켓몬 카드를 뽑을 수 있는 자판기가 있다며, 누가 더 희귀한 캐릭터를 뽑느냐로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덥고 습한 날씨, 이마엔 땀이 맺히는데도 자기네들끼리 연신 웃어가며 즐거워했다.

조금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들에겐 아주 진지한 놀이로 보였고,

그 순간은 아주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조금 의아했지만 이내 따라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 더운 날씨에… 그깟 만화 캐릭터 하나 때문에 저렇게?”


왜 이런 생각을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걸까.

‘나이라면, 직장인이라면, 어른이라면…’


나에게 낯섦은 후배들의 모습이 아니라, 그걸 이상하게 바라본 내 태도였다.


언제부터일까, 우리는 즐거움을 누릴 자격조차 사회적인 조건과 연결해 버리곤 하는 것 같다.

‘지금 나이에 이걸 해도 되나?’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런 걸 즐긴다고?’

온갖 사회적 잣대들이 마치 무의식인 것처럼..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행동 양식과 판단 기준들이 사실은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이라는 얘기를 읽었다.

내가 후배들의 행동을 보며 느꼈던 어색함도 결국 내가 무의식적으로 내재화한 사회적 기대와 규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후배들의 땀을 흘리며 뽑은 카드를 들고 자랑하던 모습은 단순한 장난이기보다는

기억 속에 묻혀있던 순수의 복원, 지금의 자신에게 허락해 주는 짧은 자유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적절함’의 경계를 조용히 넘나들고 있었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하고 싶은 걸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만든 틀에서 스스로를 꺼내는 일이다.”

- 김수영,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후배들이 짧은 점심시간 동안 꺼내든 것은 내가 잊고 지내던 감각이었다.


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커다란 성취나 의미에서만 행복이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요즘 내가 깊게 빠져 있는 고민이다.


어쩌면, 거대한 목표나 성취보다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찾을 수 있는 기쁨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진짜 힘이 되는 것은 아닐까.


후배들이 웃으며 보여준 그 카드 한 장은, 잠시지만 내 마음에 바람을 불러왔다.

그들의 기쁨이 나에게 전염되면서,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무거운 잣대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에서 오는 순수한 즐거움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의미일 수 있겠다.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작은 행복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행복들이야말로 이 각박한 세상을 조금씩 부드럽게 만드는 힘인지도 모른다.

나도 나만의 포켓몬 카드를 찾아봐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