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욕망의 딜레마
Balmorhea – “Settler“
주말에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닌 본가에 갔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할 일이 많다.
새로운 사업기획, 나를 돌아보고 표현하는 글쓰기, 목표로 정해놓은 독서, 그리고 운동까지.
그래서 본가에서 여유롭게 있지 못하고, 서둘러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이번 주는 유산소 운동을 조금 더 해야지, 선물 받은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내 삶에 대해 고민해 봐야지,
이런 생각을 잘 정리해서 글로 옮겨봐야지, 내일은 월요일이니까 다음 주 회사에서의 일정을 미리 리뷰해 봐야지.’
그 순간의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인 것처럼.
그런데 오징어게임 시즌3가 나왔다는 넷플릭스의 알람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넷플릭스를 보려면 맥주 한 잔을 빼놓을 수 없지? 안주는 뭐가 좋을까?’
그렇게 내 주말의 계획이 아주 짧은 순간에, 자각하지도 못한 채로 무너졌다.
쇼펜하우어의 책은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있고, 운동화는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소파에 누워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본질을 ‘의지’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이 의지가 우리를 끊임없는 욕망과 고통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원하면 그것을 얻을 때까지 고통받고, 얻고 나면 또 다른 것을 갈망하는 존재라는 것..
내가 경험한 것은 바로 이런 “의지의 이중성” 아닐까.
성장하고 발전하려는 고차원적 의지와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원초적 욕망 사이의 갈등.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의 맹목성’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순간의 유혹에 무력하게 굴복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딜레마는 더욱 첨예하다.
스마트폰 알림 하나, 넷플릭스의 ‘시청하기’ 버튼 하나가 우리의 의지를 시험한다.
즉석 만족의 시대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장기적 목표와 단기적 욕구 사이에서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설계할 때 ‘중독성’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현대의 기술은 우리의 원초적 욕구를 정확히 겨냥하도록 설계되었다.
주말이 저물어가는 일요일 늦은 오후, 그냥 흘려보낸 것만 같은 내 시간이 아까워 이 글을 적는다.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비슷한 일반적인 삶을 나는 살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삶을 바라는 건 분명히 아닌데… 왜 나는 행동하지 못하는 거지?
자책하기는 싫지만, 조금은 한심한 생각에 책들을 뒤적이며 위안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