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과 속도 사이의 고민
요즘은 이정표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방향을 모르겠다는 생각이 핑계처럼 되뇌어져서 하루 종일 무기력하다.
하지만 진짜 모를 수도 있으니까, 지금 나는 핑계와 진실 사이 어딘가에 있다.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만 해도, 아니 그 이후로 꽤나 오랫동안 내 삶은 꽤 단순했다.
좋은 직장, 직책과 직함, 높은 연봉, 그리고 명품 시계와 외제차를 상상했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내가 이루어야 할 목표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방향’보다 ‘속도’가 중요하다고.. 일단 빨리 달리면, 어딘가에는 도착할 거라고 믿었다.
그 시절의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줄 알았다.
좋은 대학, 좋은 회사, 빠른 승진, 높은 연봉.
이런 단계적 목표들이 마치 게임에서의 레벨업처럼 명확해 보였다.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고, 그 길이 틀렸다고 의심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속도를 내려고 해도 자꾸 불안한 감정들이 올라온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이렇게 계속 달리다 보면, 그 끝엔 뭐가 있을까?”
“언제부터 나는 방향도 없이 앞으로 가기만 하고 있었지?”
이런 질문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무시하고 달렸을 텐데, 지금은 그 질문들을 모른 척하기가 어렵다.
마치 내 안의 다른 목소리가 잠깐 한 번 멈춰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제 벽에 지도를 붙여놓고, 눈을 가리고 다트를 던져 정해지는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유튜브 영상을 봤다.
예상치 못한 곳에 도착했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모습.
계획하지 않았던 만남,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들이 여행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별생각 없이 멍하니 영상을 보다가 문득 든 생각.
“나는 지금 나에게 중요한 어떤 우연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너무 정해진 길만 보고 달리느라, 길 위에 떨어진 다른 가능성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성공을 향해 달리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 더 큰 성공을 한다고들 얘기하는데..
좋아하니까 오래 하고, 오래 하니까 깊어지고, 깊어지니까 결국 잘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돈도 명예도, 그리고 명품시계와 외제차도 뒤따라오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얘기는 처음에는 너무 이상적이었다.
‘그냥 좋아하는 일만 하면 성공한다고? 세상 사는 게 그렇게 쉽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 버티고, 더 깊이 파고들고, 결국 더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나처럼 사회적으로 보이는 목표만을 쫓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지치고, 번아웃을 겪고, 무기력해지는 경우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성취해도 공허하고, 목표에 도달해도 다음 목표가 보이지 않는 무한반복의 삶을 살다가 죽는 건 아닐까.”
나는 아직 내가 열중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아서 조바심이 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신만의 열정을 찾은 것 같은데, 나만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 같아서 초조하다.
인생에 정답은 어딘가에 숨어있고, 그것을 찾지 못한 나는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런 생각 자체가 또 다른 압박이라는 생각이 들고..
열정도 성취해야 할 목표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요즘 나는 늦은 저녁에 아무 책이나 펼쳐보곤 한다.
속도보다는 방향을, 목표보다는 과정을, 성취보다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
아직은 그 구체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하루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