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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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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헌일 Oct 26. 2015

승강장.

서로를 스쳐가다.


 승강장을 걷다가

 우연히 길을 묻는 사람처럼 


 나에게 당신은 그토록 일방적으로 

 불현듯 다가왔다.


 당신 딴에는 어렵사리 실례를 무릅쓰고

 내게 작은 용기를 내보았으리라.




서로에게 아직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점에서

자신의 뜻을 함께 하자고 당신은 말했다.


목적으로 삼으려 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당신은 말없이 노선도를 건넸고

나도 말없이 그것을 건네받았다.


긴 시간갖고

주의 깊게 들여다 보았는데

당신이 가려는 곳은

내겐 무척 생소한 곳이었다.


처음 마주한 길을 찾기 위해

피차 필요에 의한 말들만이 오갔

필경 낙착이 되지 못했다.


당신은 무척 아쉬운 티를 냈고

나는 그것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그토록 일방적으로

불현듯 다가왔던 것처럼

당신은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서로를 알아가기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도 아무렇지 않았고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서로의 지향점이 달랐던 것을 어찌하겠는가.

언제나처럼 승강장을 지나다

문득 눈에 띈 노선도를 보고 있자니

과거의 스쳐갔던 당신이

지금 이렇게 다가올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아득함을 느낄 때쯤,

노선도에 눈을 떼어 몸을 돌렸고

승강장의 반대편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멀리 승강장의 끝에서

당신을 닮은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길을 묻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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