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무엇인가가 내 눈 앞에 우뚝 솟더니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빛을 잃은 암흑에 갇혀버렸다.
뜬소경으로 더듬는 손의 감촉은
눅눅하고 끈적였으며
알 수 없는 노린내를 풍겼고
눈부심을 겪어본 지 오래된 것만 같은
꽤 흘러버린 시간을 체감하고 있었다.
거북함이 느껴지는
유난히 짙었던 그늘을 들추니
권태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권태로움.
꿈꾸는 이상은
여전히 저 위에서 빛을 내고 있었으나
육체는 바닥 모를 심연으로 꺼져갔다.
빛을 쬐지 못해 마른 어깨는
축 쳐져 더욱 야위어 보였고
얇은 손마디의 근육들은 탄력을 잃어갔다.
숟가락을 쥐는 것조차 힘이 들어
밥 한 숟갈 떠먹지 못할지언정
비틀어진 몸뚱이 꿈틀대며
그때만큼은 야생의 짐승처럼
목구멍에 맺힌 악을 토해내고
오로지 살기 위하여
음식에 얼굴을 묻은 채
애처로이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하나 권태에서 파생된 공복감은
무엇을 삼켜 넘겨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