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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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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헌일 Apr 28. 2016

자기애(自己愛)




많은 것을 남겨두

가진 것 없이 떠나

봐주는 이 하나 없

세월의 기류로 흘러들어

불투명한 존재로 남겨다.


그렇게 정적에 물듦으로

존재의 인기척을

땅 속 저 깊은 곳에 묻었다.


긴 시간 흐른 뒤,

그 자취를 다시 꺼내어 보았을 때

무언가 의미를 지녔었던 것처럼

그때를 기억하기 위함이었고

애써 나 자신을 어설프게나마 달래고 싶었던

애처롭기 그지없는 개인적인 행위였다.


두터운 입김이 나를 감싸게 하여

처량한 내 모습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오늘의 나는 주책스럽게도

내가 나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하고

어렴풋이 생각해본다.




여러 해가 지난 무렵의

모다 깃비가 내리고 있는 어느 봄날이다.


나는 지금 이 자리

다시 두 발을 딛고 서있다.


묵묵히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굳건해진 손짓으로

질어진 땅을 파헤쳐나갔다.


저 밑으로 가라앉혔던 자기애를 꺼내

차분히 손으로 감싸 올렸다.


곧게 뻗은 열 손가락으로

모자람 없이 쥘 수 있을 정도의

무척 왜소한 모습으로 잠들어있다.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 손 안의 이 작은 존재도

똑같이 느끼는 것인지

조금씩 움찔거렸다.


감정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태풍의 눈을 맞이한 것처럼

어렵게 되돌아온 나의 목소리로

나 자신을 불러본다.























무겁게 떨어지는 빗물,

가느다랗지만 거대한 떨림

그리고

나를 부르는 나 자신의 목소리에

눈을 다.


정적으로 떠돌던 나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의 맨 끝에

떨리고 있는 거대한 손바닥 위,

자신을 감싸 쥔 한 거인의

일렁이는 눈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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