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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Oct 30. 2021

산티아고 순례길, 부르고스~Castrojeriz,

15. Day12, 한국인 알베르게, 39.43km

죽은 자들은 품에 안으면서 어찌 산 자들을 품에 안지 않는 것이냐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아팠다. 어제 대도시 부르고스에서 사람들과 술을 너무 많이 먹은 것. 40km를 걸어갈 예정이라 4시에 일어났지만, 술이 안 깬 내 모습을 보고 다시 잤다. 물론 6시에 일어나도 여전히 술에 깨지 않았다.


 오늘 목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가는 것. 순례길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하나 있다.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은 보통 이곳을 꼭 들린다. 그리고 오늘부터 메세타 평원을 걷기 시작한다. 메세타 평원은 스페인 북부 지방에 있는 광활한 평원인데 그 길이가 거의 200km에 달한다고 한다.



 메세타 평원에 가는 길에 나랑 비슷한 연령대의 리투아니아 출신 친구를 만났다. 그는 지금까지 2개의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한다. 2시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광활한 메세타 평원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지만 정말 넓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초록색 평원을 오전 내내 걸으면서 황홀감을 느꼈다. 끝도 없는 평원이라 지루해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난 이 드넓은 평원이 좋았다. 그냥 광활한 평원 위를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았다.


 오후 1시 15분에 혼타나스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메세타 평원 언덕에서 약간 내려가는 길에 있는데, 개인적으로 마을이 예뻐서 기억에 남는다. 도착해서 전에 한 번 본 적 있는 한국인 25살 친구 BW이를 만났다. 취업에 대해 관심이 많은 친구에게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같이 밥을 먹고,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길을 떠났다.


점심을 먹은 혼타나스 마을


왼쪽. 메세타 평원과 나의 배낭,  오른쪽. Castrojeriz에 도작하기 전


 오후에도 한참을 걸어서 드디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다행히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오늘 저녁은 비빔밥이라 한다!! 오늘 새로 만난 한국인 분들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과 섞여 비빔밥을 먹었다. 한국인들은 고추장으로, 외국인들은 간장소스로 밥을 열심히 비볐다. 처음 밥을 비벼보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니깐 왠지 모르게 귀여웠다.


왼쪽. 감동의 비빔밥....!!!!,   오른쪽. 밤에 모여 얘기를 나누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저녁을 먹으면서 순례길을 걷게 된 계기를 묻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는 15년 전에 아내와 이혼하고, 자기 아들이 군 복무 기간에 연락 한 번 하지 않아 아들과도 연을 끊었다고 한다. 그렇게 홀로 살아가다가 까미노에 오면서 아들과 다시 연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질문과 고민을 하며 길을 걸었다고 한다. 거기서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너는 죽은 자들은 품에 안으면서, 어찌 산 자들을 품에 안지 않는 것이냐"라고 했다 한다. 그 말을 듣고 아들에게 연락했더니, 아들이 돌아오면 구두 한 켤례를 사드리겠다고 한다. 할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고, 우리 모두는 숙연해졌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이미 정해진 답을 망설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인생의 강물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정해진 답에 용기 내어 연락을 드린 할아버지가 괜히 멋있었다.


 저녁을 다 먹을 때쯤, 한국인 주인분이 오셨다. 생각보다 굉장히 젊은 여성분이셨다. 그분은 지금 외국인 남편을 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다고 했다. 성공과 성과만 바라보는 한국 사회와 세상에 지쳐 2013년에 까미노 길을 걷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그때의 남자 친구는 길을 걸을 때 계속 힘들어하는 분들을 도와주고 같이 걸어주곤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이왕 사는 거 좀 의미 있게 살아야 하지 않냐"라고 생각했고, 이 알베르게를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남편분의 생일이었다. 다 같이 다양한 국적의 언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고, 한창 동안이나 와인을 마셨다. 오늘은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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