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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Oct 31. 2021

산티아고 순례길, Castro~프로미스타, 25.5km

16. Day13, 반복적으로 스치듯 만나는 인연

순례자의 여권에 도장을 찍어가며 빈 공간을 채워나가듯, 반복적으로 스치듯 만나는 인연이 관계의 무늬를 그리며 텅 빈 공간을 채워주었다.


 오늘은 나오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언덕을 넘어야 했다. 그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광활한 메세타 평원이 보였다. 마치 인터넷으로만 보던 평원이 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오직 평원과 가운데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들만 보였다. 


언덕에서 바라본 광활한 메세타 평원. (실제로 보면 정말 끝도 없이 길다.)
언덕으로 내려오고 본격적으로 걷기 전


 거기서 전에 한 번 봤던 프랑스 교수님을 만났다. 그분이 좋아하는 작가와 책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좋아한다고 한다.(무슨 책인지 모르겠네....). 그리고 다음 마을에서 누나들을 기다리려 했는데, 예상치 못한 인물 Mark가 나타났다.


 Mark는 전에 로르코스에서 만났던 체코 친구인데, 같이 그날 술을 너무 많이 먹고, 다음날 공짜로 나오는 와인 수도꼭지에서 와인을 한가득 따랐던 친구였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누나들에게 먼저 가겠다고 하고 Mark랑 같이 갔다. 


 Mark는 알고 보니 한국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다. 예전에 일할 때 한국 출장도 많이 갔었고, 경상도에 자전거 여행도 했으며, 제주도 올레길도 걸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나보다 더 많이 한국 여행을 한 것 같은데....) 그리고 자기 동네 집 근처에 한국 공장이 있어 한식도 많이 먹었고, 삼계탕을 자주 해 먹는다고 한다 ㅋㅋㅋ Mark랑 계속 같이 걸으면서 한국 얘기, 남북한 정치 얘기, 체코 얘기, 직장 얘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한참 동안 떠들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맑아졌다. 까미노에서는 각자 다른 속도의 걸음 때문에 속도가 다르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신기하게 한 번 얘기를 나눈 사람들은 계속에서 만났다. 모두가 한 목적지와 한 길 안에서 연쇄작용처럼 계속 만나는 신기함이 있다.


 마치 매일 순례자의 여권에 도장을 찍으며 빈 공간을 채워나가듯, 반복적으로 스치듯 만나는 인연이 텅 빈 공간을 계속 채워주었다. 처음에는 점이었던 것이 점들이 되며 다양한 선분으로 연결되어 관계망을 형성해 주었다.


 이 길에서 한 번 같이 와인을 먹고, 한 번 같이 얘기를 나눈 사람들은 대부분 낯선 나라의 사람들이지만, 다시 만나면 마치 오랫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처럼 편안했고 친해져 있었다. 한 번 말을 트고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 이런 진한 연대감을 갖게 할 줄이야. 모두 다 살면서 두 번 다시는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짧지만 모두들 내일을 맞지 않을 사람들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렇게 세상 모든 만사를 재쳐두고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까미노 길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프로미스타를 도착했고, 누나들과 JC, BW도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우리보다 하루 더 먼저 출발한 한국인 친구들도 새로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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