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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May 04. 2020

육아휴직의 최대 난제 '요리'를 대하는 자세

육아 경력 4년에 두 번째 육아휴직. '아빠'이자 '주부'라는 역할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일터에 나가는 아내를 배웅하는 것부터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돌아와 둘째를 보는 일까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하지만 유난히 처음인 것처럼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 있다. 바로 요리다. 매일 4인 가족의 밥상을 준비하는 건 정말 녹록지 않은 일이다. 이번 육아휴직의 최대 난제라 할 만하다.


3년 전 첫 번째 육아휴직을 했을 때는 요리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당시는 첫째가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아이 식사로는 이유식을 만들어주면 그만이었다. 이유식은 재료 준비하는 데 손이 많이 가지만 '이유식 제조기'라는 게 있어서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어렵지 않게 조리할 수 있다.


아내와 나는 그냥저냥 되는 대로 챙겨 먹었다. 장모님께서 밑반찬을 자주 해주신 덕에 냉장고가 늘 가득 차 있었으므로, 직접 요리를 하지 않아도 무난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색다른 음식을 먹고 싶을 때는 주저 없이 배달음식을 시켰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선 두 살이던 첫째가 올해로 다섯 살이 됐다. 아침저녁 하루 두 끼를 집에서 해결하는데 어른들과 같은 일반식을 먹는다. 게다가 호불호가 강한 첫째는 웬만큼 맛있지 않으면 스스로 수저를 들지도 않는다.


그 사이 식구도 하나 늘었다. 2018년에 태어난 둘째는 곧 18개월 차로 접어든다. 이유식을 만들어 먹여도 되지만 그러면 일반식 외에 요리를 따로 한 번 더 하는 셈이니 번거롭다. 네 가족 모두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한 번에 많이 만들어 나눠 먹는 것이 훨씬 편한 상황인 거다.


언제까지 배달음식에 매달릴 수도, 장모님께서 해주시는 반찬에만 의지할 수도 없는 황.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나는 요리에 관한 원칙을 하나 세웠다. '일단 쉬운 요리만 하자!'는 것이었다. 초반부터 잔뜩 힘을 줘 고난도 요리에 도전하다가는 금세 제풀에 지쳐 손을 놓게 될 것만 같았다.


대신 쉬우면서도 괜찮은 맛을 낼 수 있는 요리에 먼저 익숙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야 즐겁게, 꾸준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이 쉬운 요리인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나는 '재료 좀 볶다가 물 넣고 끓이면 되는 국물 요리', '재료 좀 썰어 넣고 볶으면 되는 볶음 요리' 정도로 정리했다.


그중에서도 나는 국물 요리를 먼저 공략했다. 채소와 고기 등 각종 재료가 들어가는 국은 아이들 식사로 제격이다. 반찬 투정을 부리는 아이에게도 건더기 가득한 국물에 밥 한 공기 말아주면 든든하게 한 끼 먹일 수 있다.


국은 비상식량으로 비축해두기에도 좋다. 한 번에 많은 양을 해놓고 얼려서 보관하면 두고두고 먹일 수 있으니, 국물 요리 몇 가지만 할 줄 알아도 육아의 짐을 크게 덜 수 있다.


내가 가장 애정 하는 메뉴는 소고기 뭇국이다. 쉽게 완성할 수 있으면서도 맛이 좋기 때문이다. 소고기 뭇국을 처음 직접 끓여봤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해서였다.

 

냄비에 고기 넣고 볶다가 적당히 익었을 때 무를 넣고 좀 더 볶아준 뒤, 물을 부어 푹 끓이니 완성됐다. 중간중간 마늘, 간장, 소금 등을 알맞게 조절해 넣는 것이 관건인데 이 또한 그리 어렵지 않았다. 뭔가 부족하다 싶은 생각은 국을 오래 끓이니 말끔히 사라졌다.

비주얼은 별론데 맛있었다. 정말이다.

이후 나는 재료와 레시피에 약간의 변주를 주며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미역국, 어묵 뭇국, 계란국, 콩나물국 등 의외로 간단히 끓여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최근에는 찜닭까지도 국물 요리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랐다. 양념에 재운 닭을 갖은 재료와 함께 끓였더니 어느새 찜닭이 완성되어 있었다.


'요리'는 나 같이 평범한 사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찜닭 요리'는 그런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 경험이었다.

내가 찜닭을 만들다니

요리에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아내의 호평도 이어졌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볼 때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가 전업주부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면 나는 어깨가 한껏 솟아올라 "그럴까? 나도 내 적성을 찾은 것 같아."라며 능청스럽게 응수한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주방에서 할 줄 아는 일이라곤 '라면 끓이기'밖에 없었던 내가 요리를 하다니.


세 달 전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이제 요리도 해야지? 애들 골고루 좀 먹여 줘.”라고 말하는 아내에게 “세 끼 다 똑같은 걸로 먹일 건데? 나 편한 대로 할 건데?”며 뻔뻔하게 굴었던 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식사 시간만 되면 식칼과 도마를 꺼내 들고, 전장에 나서는 장수와 같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주방에 선다. 뭔가 하나라도 새로운 메뉴를 밥상에 올리기 위해서 말이다.


자만하긴 이르다. 그래 봤자 아직 배달음식과 장모님의 반찬 원조가 절실한 초보 주부일 뿐이니까. 맛깔난 국물에 메인 요리, 그리고 밑반찬까지 완벽하게 혼자 요리해 내놓을 수 있는 그날까지 겸손한 자세로 정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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