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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May 22. 2020

나는 '욱하는 부모'가 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가족이나 지인들 사이에서 분하고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어지간해선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그동안 집에서나 학교, 직장에서 화를 낸 일이 많지 않다. (아예 없었다고는 말 못 한다.)


분노의 감정을 잘 표출하지 않는 편이다 보니, 막상 화가 나는 상황이 닥치면 몸이 반응한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냉기가 돌면서 손발이 부르르 떨린다. 입에 침이 마르고 상대방을 향한 목소리도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내 감정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 정도만 눈치챌 뿐, 그게 내 딴엔 화를 낸 것이란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그 정도로 화를 내는 데 미숙한 나였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쉽게 짜증을 내고, 욱하며 언성을 높이는 일도 많아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이들 앞에서 말이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에게 유난히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한창 호기심 왕성할 시기인 둘째와 집에 있으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한눈을 팔았다가는 아이가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 물티슈를 열어 다 뽑아 놓는다든지, 장난감 바구니를 엎어버린다든지, 책을 쫙쫙 찢어 놓는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일들은 첫째 때도 수없이 겪었기 때문에 많이 단련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의 돌발 행동은 그런대로 견딜만했지만, 내가 피곤하거나 다른 일로 예민해져 있을 때 그것은 견딜 수 없는 큰 자극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매일 아침 7~9시는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다. 아이 둘 밥을 먹이고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것까지 혼자 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원 시간이 다가오면 점점 마음이 급해진다. 그런데 첫째는 식판을 앞에 놓고 세월아 네월아,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속이 터지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밥을 먹도록 도와준다.


이번엔 둘째 앞에 놓인 밥을 한술 떠 아이 입에 넣어준다. 그런데 그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밥을 잘 받아먹던 아이가 혀를 내밀며 있는 힘껏 입안에 있는 밥을 뱉어낸다.


음식물이 둘째 몸을 타고 바닥에 떨어져 철퍼덕 소리를 낸다.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한다.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식탁을 손으로 내려친다. 아이에게 소리를 버럭 지른다.


맞은 편에서 내 모습을 본 첫째가 얘기한다.


"깜짝 놀랐잖아~"


첫째의 말에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아 본다. 그제야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는 둘째의 얼굴이, 얼어붙은 듯한 첫째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하...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아이들 앞에서 절대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은 그렇게 또 한 번 무너진다.


정신을 차리고 그나마 내 말을 알아듣는 첫째에게 먼저 사과한다. 휴, 미안하다. 놀랐지? 아빠가 동생한테 소리 지르지 말아야 하는데 또 그랬네. 이제 안 그럴게.


이후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면 내가 화를 냈던 순간을 다시 돌이켜 본다. 내가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나 조차도 이런 내가 낯설다.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내 행동을, 이제는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책 한 권을 다시 펼쳐보았다. 오은영 박사의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다.

밑줄 그어놓은 부분 위주로 찬찬히 훑어보는데 마치 처음 읽는 책인 것처럼 생경했다. 저자의 조언을 까맣게 잊고 지냈던 거다. 이번에는 확실히 새겨두고 싶었다.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욱하지 않는 아빠가 되기 위해.


아래는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중 유난히 내 눈에 밟혔던 문장들이다.

1. 욱한다는 것은 엄연히 감정 조절이 미숙한 것이다. 감정조절장애이며 감정 발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2. 욱하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에게 그대로 모델링 되어, 아이도 욱하는 어른으로 클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부정적 감정은 저렇게 표현해야 하는 거구나'라고 학습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자기감정을 만들고 소화시킬 능력이 생기기 전까지,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감정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끊임없이 보고 배운다. 드라마에서, 오락 프로그램에서, 가정에서 욱하는 모습을 본 아이는 그대로 학습한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자기감정을 만들고 소화시킬 능력이 생기기 전까지,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감정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끊임없이 보고 배운다. 드라마에서, 오락 프로그램에서, 가정에서 욱하는 모습을 본 아이는 그대로 학습한다.

특히 육아에 지친 부모가 감정 조절에 실패하고 아이에게 쉽게 욱하게 되는데, 이는 아이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3. 우리 뇌에서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다양한 감정을 조율하는 부위가 변연계다. 부모가 욱하는 모습만 보고 자란 아이는 이 변연계가 무뎌진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에 무딘 아이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냥 좀 기분이 나쁘고 불편해지면 욱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 줄 알게 된다.

4. (아이 앞에서 욱하는) 세 번째 이유는 아이가 사랑하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만만하기 때문이다. 욱은 순간적인 감정 조절의 문제다. 내가 상대에게 얻을 것이 많다면 그 사람 앞에서 절대 욱하지 않는다.

나 없이는 못 사는 약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욱하는 것이다. '자식이지만 이 아이는 내가 인간으로서 보호하고 존중해 줘야지'라는 마음이 강하면 아이한테 욱하지 못한다.

5. 육아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덜 낸다. 육아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화가 많고 짜증이 많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화가 나고 욱한다면, 아이를 잡을 것이 아니라 나의 육아 방식에 이상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아이 탓이 아니라 내가 내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욱하는 모습을 본 아이는 그대로 학습한다."는 말이 특히 뼈 저리게 다가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첫째가 둘째에게 툭하면 소리를 질러대서 그럴 때마다 "동생한테 그러지 좀 마."라며 다그치곤 했었는데, 이제 보니 나한테 배워서 그런 건가 싶다.




오은영 박사는 이 책에서 "육아는 인간의 성장을 도와주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인간적인 미성숙함"이 있는데, 육아를 통해 "자신의 성격적인 문제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켜 결국 인간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다수라고 하는데, 나는 과연 육아를 성장의 계기로 삼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성장'까지는 모르겠고 일단 '욱하는 부모' 타이틀부터 벗어던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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