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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Sep 21. 2018

아이에겐 TV보다 음악을

오늘의 소소한 물건, 벽에 고정해서 사용할 수 있는 CD플레이어다. '소소'하다고 하기에는 좀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용하게 쓰기도 했고, 여기에 얽힌 나름의 에피소드도 있어 소개해보려 한다.

 



벽걸이 CD플레이어는 올해 초 생일에 받은 용돈으로 산 물건이다.


나는 평소 CDP와 같은, 각종 오디오 제품에 관심이 많다. 그렇게 깊은 관심은 아니지만. 여윳돈만 생기면 그런 제품들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든다.  


오래전부터 자취를 하다 보니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하면서부터 '집'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고, 그래서 늘 조용한 곳이었다. 그게 딱히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떨 때는 그 고요함을 다른 소음으로 채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CD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 플레이어는 필수로 마련해 두었었다. TV는 물론이고.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까지 생기면서 혼자만의 공간은 사실상 없어졌다.


집에 오면 가족이 있으니 조용할 일도, 이제는 없다. 나를 위한 오디오 플레이어의 필요성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아내도 딱히 이런 기기에 관심이 없던 터라, 자연스럽게 우리 집은 '음악이 흐르지 않는 집'이 되었다.


나는 그게 내심, 무의식 중에, 계속 아쉬웠나 보다. 올해 초 생각지도 못했던 여윳돈이 생겼을 때, CD플레이어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 보면.


그런데 나름의 '거금'을 들여 혼자 뭔가를 사는 게 망설여졌다. 결혼한 사람들이라면 무슨 얘긴지 알 거다.


나는 '거실에 놓을만한 CD플레이어 하나 있으면 딸에게 동요를 틀어주며 놀 수도 있고 좋지 않을까?'라는, '이건 육아용품이다'라는 기적의 논리로 포장, 아내에게 묻지도 않고 벽걸이 CD플레이어 구입을 강행했다.  


벽걸이 CD플레이어는 의외의 타이밍에 힘을 발휘했다.


첫째 딸 낭콩이는 사실 TV, 스마트폰 중독의 직전 단계까지 갔었다. 육아휴직이 끝나갈 때 즈음, 아이와 함께 다 같이 다낭 여행을 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당시 두 돌을 맞이하기 전이었던 낭콩이는, 떼를 쓸 때 도무지 달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여행하면서 밥을 먹을 때나,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 '뽀로로 찬스'를 쓰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남발하게 됐던 것이다.    

여행에 돌아와서도 낭콩이는 계속해서 '뽀로로'를 찾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또 그 시기,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했던 터라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는지 집에만 오면 TV를 틀어달라고 떼를 썼던 낭콩이.


'떼를 썼다'라고 표현했지만 그 정도는 정말 심각했다.


아이가 TV에 중독될까봐 신경이 쓰여서 "낭콩아~ 오늘은 TV가 머리가 아파서 좀 쉬고 싶대~"라며 TV를 켜주지 않으면 대성통곡하기 시작, 있는 힘껏 울어 제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말,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사람이 저렇게 울 수도 있구나...'라는 걸.


어쨌든, 사안의 심각성을 느끼고 조치를 취했다.


먼저, TV 전원 선을 아이 몰래 뽑아버렸다. 그리고는 TV를 보여달라고 할 때마다 거짓말을 했다.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르며 최대한 태연하게) 어? 이상하다. 왜 TV가 안 켜지지? 너무 많이 봐서 고장 났나봐~"


낭콩이는 훌쩍 거리며 리모컨 전원 버튼을 연신 눌러댔지만 켜질 리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 떼를 쓰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신기하게도 낭콩이는 금세 체념하고 다른 장난감을 찾아 떠났다.


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로 취했던 조치가 바로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요즘은 멜론 같은 앱의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많이 듣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준답시고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아이가 또 금방 달려들까봐 신경이 쓰였다. 마침 얼마 전 구입했던 벽걸이 CD플레이어가 있으니, 잘 됐다 싶어 아이와 집에 함께 있을 때 자주 사용했다.


동요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더 많이 들려줬던 것 같다.


동요는, 아이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낭콩이에게는 관심을 오래 끌지 못했다. 통통 튀고 발랄한 음악들이 아이를 오랜 시간, 춤추고 놀 수 있게 해줄 것 같았지만 10분을 채 넘기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은, 그걸 들으면서 딱히 뭘 할 수는 없다. 아이와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춤을 추기도 어려운, 그런 음악이다. 하지만 '무심한 듯 시크하게' BGM처럼 틀어놓으면 지루한 감 정도는 쉽게 없앨 수 있다. 기분 탓이겠지만 TV를 보지 못해 격양된 상태에 있던 아이의 감정을 누그러 뜨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스마트폰과 TV를 대신할 수 있는, 아이를 위한 소소한 물건들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


'어떤 물건으로 어떻게 놀아주면 아이가 재미있어할까?'


요즘 하고 있는 가장 큰, 하지만 기분 좋은 고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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