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음'과 '힘듦'이 공존하는 일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때, 두 단어를 어떤 순서로 말하는지에 따라 어감 차이는 꽤 크다. "좋긴 한데, 힘들기도 해."라고 하는 것과 "힘들긴 한데, 그래도 좋아."라고 하는 건, 분명 다르다.
예를 들어 나는, PD라는 내 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좋긴 한데 힘들지"라고 표현하곤 한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직업이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재미나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이 '힘듦'을 상쇄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요즘은 좀 그렇다.
그럼 '육아'는 어느 쪽에 속할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후자라고 본다.
'힘든데 좋은 것'.
지난 주말, 문득 든 생각이었다.
아이와 함께 에버랜드에 다녀왔다.
멀기도 하고 주말마다 붐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 추석 연휴는 주말 포함 5일이나 돼 꽤 길었고, 그래서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 에버랜드에는 아이의 관심을 끌만한 동물들도 많으니 힘 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었고, 하늘도 맑았다.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씨였다.
그런데, 그렇게 '용기'를 낸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우리 부부는 녹초가 돼버렸다.
"아이고, 아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세 살 아이와 함께 가기에 에버랜드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든 곳이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동선이 긴 데다가 언덕, 계단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안아달라고 칭얼대기까지 하니 힘이 들 수밖에. 또 햇살은 얼마나 따가운지, 실내 롯데월드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생각보다 사람도 많았다. '사파리'와 '로스트밸리' 모두 1시간씩 기다린 후에야 탑승할 수 있었다.
"이제 당분간 에버랜드는 못 오겠다..."
오랜만에 극강의 고난을 겪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부부는 최소 5년 뒤를 기약했다. 그때쯤이면 첫째가 초등학생일 테니 조금은 낫겠지, 하면서.
그런데 신기한 건 이렇게 아이와 하루 종일 놀고 집에 와서 한숨 돌리고 있으면, 여지없이 '그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이가
동물들을 넋 놓고 바라보는 모습,
손에 모이를 올려놓고 새가 날아오길 기다리던 모습,
기린을 가까이서 보고 놀라 움찔하던 모습,
에버랜드가 다 자기 세상인 양 뛰어다니던 모습 등
떠올리면 웃을 수 있는 추억들이 또 한가득 쌓였기 때문이다. 어깨와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뻐근하다는 사실은 잊을 정도로.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에버랜드는 당분간 가지 않기로 아내와 함께 다짐했지만 내년, 혹은 내후년에 또 다녀오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