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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Nov 05. 2018

첫째 출산의 추억

벌써 3년이 지났다니...

11월 마지막 주,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원래 예정일은 12월 초이지만 수술을 할 생각이라 출산일을 조금 당겨 잡은 것이다.


자연분만을 시도하지 않고 일찌감치 수술을 결정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당시, 우리 부부는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연주의 출산은 출산 과정에서의 의료진 개입을 최소화 한, 정말 '자연적'인 출산 방법이다. '수중분만'이 그 대표적인 형태이다.


얼마나 특별한 경험일까. 물론 나로선 상상할 수 조차 없을 정도의 고통이 아내에게 뒤따르는 일인 데다 여러 모로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출산이라는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마치 아이를 만나러 가는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예정일만을 기다렸다.

신생아용 베개. 이런 것도 직접 만들고 그랬다.

하지만 예정일이 되어도,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 아이가 태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임신 42주 차로 접어들었을 때, 아내는 입원을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병원에서는 걱정할 것 없다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는 한편, 나를 따로 불러 플랜B에 대한 언급을 하기 시작했다. 제왕절개였다.


마음이 무거웠다. 조산사와 얘기를 하고 입원실로 돌아오면 아내가 "뭐래...?"하고 물어왔는데, 어떻게 대답해주는 게 좋을지 몰랐다. 다만, 섣불리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진통을 유도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내진을 계속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조산사는 나를 입원실 밖으로 불러 아내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해줬고, 슬슬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아직은 별 문제없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태아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제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예정일로부터 14일이 지난 날의 저녁이었다.


입원실로 돌아갔을 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아내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래...?". 나는 조산사의 말을 아내에게 전했고, 차마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할까...?"라고 조심스레 되물었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던 아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애기 잘 나올 수 있게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자."라며 아내 등을 토닥였는데,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코 끝이 찡해진다.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많이도 울었다. 수술을 결정하고 아내가 잠깐 준비를 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의사 선생님이 방에 들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또 한참을 흐느꼈던 기억이 난다.


'제왕절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뭘 그렇게 슬퍼했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연주의 출산을 목표로 장장 10개월을 달려온 우리의 감정이 그랬다. 그 과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수술을 결정할 때 느껴지는 그 아쉬움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고서야 첫째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3.68kg의 우량아로 우리 앞에 나타난 첫째




'브이백(VBAC)'이라는 게 있다. 'Vaginal Birth After Cesarean section'의 약자로, 예전에 제왕절개(Cesarean section) 했던 산모가 자연분만(Vaginal Birth)을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하지만 어쨌든, 과거에 제왕절개 출산을 했다고 해서 자연분만의 길이 아예 닫혀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둘째 출산에 자연분만을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출산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마음고생을 첫째 때 제대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연분만 과정에서의 위험부담 또한 신경이 쓰였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첫째 아이도 너무나 건강하게 잘 크고 있으니, 브이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출산 방법에 대한 고민은 덜었다만, 이젠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할 아내가 걱정이다. 빨리 이 힘든 시기들이, 별 탈 없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둘째 출산 D-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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