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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Sep 20. 2019

나는 아이들의 과거에 산다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한 때 아이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훗날 아이가 글을 읽을 줄 알게 됐을 때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다.


편지를 쓰다 보면 기분이 묘해졌다.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아이가 어렸을 때 있었던 일과 그날 나의 감정들을 글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던 거다. 그러면 좋았던 일이든 힘들었던 일이든, 우리 가족이 함께한 시간들을 더 오래, 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내와 나에게는 특별했던 시간들이, 훗날 아이들의 기억 속엔 많이 남아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조차도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있더라도 아주 희미해서 그게 내 기억인지, 언젠가 어릴 적 사진을 봐서 남은 잔상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최대한 생생하게,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글 써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것이 '편지'라는 형식이었다.  


글이라는 것엔 신비한 힘이 있었다. 편지를 쓰다 보면 어딘가에 진짜 열 살, 스무 살이 된 아이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다.


만약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시간 개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저 흘러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넘나들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바로 그 '시간여행'이란 걸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아이의 '과거'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책장 뒤에 펼쳐진 5차원의 공간에서 딸 '머피'를 바라보던,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처럼.

터무니없는 얘기 같지만, '미래'에 내 편지들을 읽은 아이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 될지도 모른다. '30대의 젊은 아빠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고 말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시간들이 아이들의 '과거'와 닿아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 더 부지런히 살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고, 남는 시간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최근엔 그렇게 하기 싫어했던 운동도 하고 있다. 내가 나의 '현재'를 열심히 살아간다면 아이들의 '과거' 속에 나는 멋진 아빠로 남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아이들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그게 어떻건 간에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 떠올리는 '과거'의 시간들은 행복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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