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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Sep 06. 2019

10개월 차 둘째에 대한 11가지 기록

둘째가 돌을 앞두고 있다. 어느덧 10개월 차다. 그런데 둘째에 대한 글을 많이 쓰지 못했다. 핑계를 대보자면,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다. 퇴근하고 아무리 집에 빨리 와도 7시가 넘는다. 그쯤 되면 둘째는 재워달라며 슬슬 울어대는데, 분유를 먹이고 재우면 8시쯤 된다. 깨어있는 둘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그나마 아이가 아침 6시만 되면 나를 깨우는 덕분(?)에, 출근 전에 약간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둘째를 볼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은 여전히 부족하다. 요즘은 좀 덜 바쁜 시기라 정시 출퇴근을 하는데, 오히려 육아 참여도는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는 중이다. 얼마 전 매거진 이름도 바꿨는데, 민망할 정도다.



그래서 오늘은 둘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주목적은 기록인데, 둘째에 대한 기록이 너무 없으니 마음에 걸렸다. 첫째를 네 살이 되도록 키워 보니 알겠더라.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한다.


참 별 것 아닌데, 가끔은 그런 게 궁금할 때가 있다.

"우리 애가 언제 걸음마를 뗐지?"

"처음 '엄마'라고 한 건 언제였지?"

"언제부터 통잠을 자기 시작했더라?"

정확히 몇 월 며칠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 언제쯤이었다 정도만 기록이 되어 있어도 좋을 것 같다. 흘러가면 다시는 되돌리지 못하는, 사소하지만 특별한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잡아두고 싶은 심정이랄까.

서론이 길었다. 평소 글을 쓰면서도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 두서없이 떠오르는 대로 써본다. 요즘 둘째에 대한 기록이다.




1. 200일이 조금 지났을 때부터 통잠을 자기 시작했던 것 같다. 통잠이라고 해서 새벽에 깨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다만 잠에서 깼을 때 수유를 하지 않고 토닥여주는 정도로 다시 재울 수 있다는 얘기다.


2. 이건 나에 대한 기록. 나는 알고 보니 잠귀가 매우 어두운 사람이었다. 이 정도인 줄 몰랐는데, 새벽에 애가 바로 옆에서 목이 터져라 울어도 알지 못한다. 혼자 꿀잠을 잔 뒤 아침에 일어나 아내에게 "둘째가 웬일로 새벽에 안 깨고 잤네^^"라고 눈치 없이 말했다가 레이저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3. 둘째는 아침 6시만 되면 귀신 같이 일어난다. 알고 보면 아이가 일어난 건 훨씬 전인데 내가 뒤늦게 그 시각에 깬 것인지도.


내가 계속 안 일어나면 둘째는 내 머리맡에 와서 침대 위로 손을 뻗으며 나를 깨운다. 그래서 거의 매일 아침,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둘째 얼굴이다.

 

"아빠, 언제까지 잘 거예요...?"라고 말하는 느낌


4. 가끔은 방구석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기도 한다. 둘째가 콘센트 같은 걸 잘못 만지고 있을까 봐 걱정돼 벌떡 일어나 보면,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책장 앞에서 혼자 책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 나는 "녀석이 책을 참 좋아하나 보군", 팔불출 같은 생각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5. 한 2주 전까지만 해도 기어 다니는 게 힘겨워 보였다. 무릎을 사용하지 않고 거의 팔 힘으로만 기어다녔다. 그런데 이제 제법 무릎을 움직이며 기어 다닐 줄 알게 된 것 같다. 움직이는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전혀 다른 곳으로 가 있다. 엄한 걸 만지거나 입에 넣지는 않을지, 잘 지켜봐야 한다.


6. 이가 왜 이렇게 안 나나 했는데, 2주 전쯤인가 슬슬 아랫니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보통은 6개월 정도부터 이가 나기 시작한다는데 좀 늦은 편이다.


엊그제 둘째를 씻겨 주면서 슬쩍 아랫니 부분을 만져봤는데 딱딱한 게 느껴졌다. 이제 뭐든 잘근잘근 씹어 치아 자국을 남기겠구나, 싶었다.


7. 잡고 일어선 지는 꽤 된 것 같다. 한 달 정도 됐으려나. 이제는 슬슬 옆으로 걸을 줄도 안다. 물론 소파 같은 걸 잡아야 한다. 첫째는 11개월쯤 걷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둘째는 그것보다 조금 빠를지도 모르겠다.


8. "음마, 음~마" 하며 말 비스무리한 걸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뭔지도 모르고 내는 소리겠지만 말이다. "아빠"는 아직이다.


9. 엄마를 그렇게 졸졸 따라다닌다. 아내 말로는, 둘째와 둘이 있으면 계속 와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탓에 집안일 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둘째를 재울 때도 마찬가지. 아내가 옆에 있으면 자기를 재우고 방에서 나갈까 봐 계속 안긴단다. 엄마가 옆에 있나 없나 확인하는 것처럼. 깊게 잠든 것 같아서 슬금슬금 방에서 나가려고 하면 금세 눈치채고 벌떡 일어난다고.


10. 나에게는 그런 집착(?) 증세를 보이지 않는 둘째다. 며칠 전 둘째와 나 둘만 집에 있는 날이 있었는데, 아이가 거실에서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놀기에 나는 설거지를 편하게 하고 쉬기까지 할 수 있었다. 우연히 그날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내 느낌은 그랬다. 둘째는 내가 집에 있는 게 아직 어색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11. 아직 돌도 안 된 애를 두고 이런 말 하긴 조심스럽지만, (아직까진) 순한 편인 듯하다. 크게 별난 행동을 보인 적이 없다. 잘 웃는다.




오늘은 열한 가지를 쓰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집 밖에 나와있는 시간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애착과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나 스스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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