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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Dec 06. 2018

제왕절개 후 시작된 시간과의 싸움

둘째 출산의 기록 -2-

제왕절개를 통한 출산은 일단 수술에 들어가면 빠른 시간 안에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남자 입장에서 출산에 대해 뭐라 말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 있으나 어쨌든 자연분만과 비교해봤을 때 이것은 확실한 차별점이다.


하지만 제왕절개 출산에는 큰 '단점'이 있다.  바로 수술 후 회복의 과정이 상당히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자연분만은 '선불', 제왕절개는 '후불'이라고. 뭐, 딱 잘라서 그렇게 일반화시켜서 표현할 수 있겠냐만은 공감 가는 부분이 분명 있다. 둘째 출산 후 아내의 입원 기간 대부분을 함께 보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제왕절개 수술 후 산모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자연분만을 한 산모의 경우는 아이를 낳고 나서 그날 바로 걸어 다니기도 하고, 원하는 음식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제왕절개를 한 산모는 다르다. 수술 직후 몸을 마음껏 움직이지 못한다. 음식은커녕 물 한 잔도 마실 수 없다. 한두 시간 동안만이라면 그래도 맘 편히 참아볼 텐데,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수십 시간을 버텨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12시간


수술 후 누워만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누워 있는 게 뭐 힘든 일이냐고?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을 추가해보겠다. 먼저,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면 안 된다. 베개도 벨 수 없다.  (잘못하면 척추마취 후유증이 올 수 있기 때문)


몸 여기저기에 수액, 진통제 주사 바늘을 꽂고 있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취가 풀려 수술 부위가 아파온다. 물도 못 마신다.


TV는 볼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웃으면 배가 찢어질 듯 아플 거니까.


12시간이 지난 후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걸까? 그렇지도 않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라서 24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건 계속 조심해야 한다. 옆으로 돌아눕는 것까지 가능하나, 이때쯤이면 마취가 다 풀려서 가만히 있어도 고통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24시간


수술을 하고 나서 금식해야 하는 시간이다. 까짓 거, 한숨 늘어지게 자면 되지 않겠느냐고? 팔에는 주삿바늘이 꽂혀있고 수술 후 컨디션을 체크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연신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수술을 하기 전부터 금식을 하기 때문에 수술 후의 24시간은 더욱 참기 힘들다. 아내의 수술 예정 시각은 오전 11시였는데 전날 자정부터 물 포함,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전날부터 이어온 금식 11시간에 수술 후 금식 24시간, 총 35시간을 굶은 셈이었다. 이쯤되면 제왕절개를 '후불' 정도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수술 후 24시간만 버티면 만사 해결되는 걸까?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되는 걸까?


아니다. 24시간을 기다려도 섭취가 허용되는 건 물뿐이다. 수술을 하면서 장 기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섣불리 음식을 먹었다간 소화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아내도 수술 이튿날 오전 11시부터 물을 한 모금씩 마셨다. 그로부터 6시간이 지난 오후 5시에 비로소 미음 한 그릇을, 두 시간 뒤인 저녁 7시 흰 죽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반찬 따윈 없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미음과 죽, 둘 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비워버렸다. 얼마나 배고팠을까 싶어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금식'에 대해 정리해보자면, '24시간'이라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물이 아닌) 뭔가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수술 후 30시간이 지난 뒤부터다. 전날부터 이어 온 금식 시간을 고려하면 무려 40시간이다. 40시간.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너무 가혹하다.


43시간


수술을 하면서 맞기 시작한 수액, 진통제를 몸에서 떼어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수액과 진통제는 회복 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수술 후 하루가 지나면 몸을 슬슬 움직일 수 있게 되는데, 팔에 계속 주삿바늘이 꽂혀 있으니 불편한 게 사실이다. 아내는 수술 3일 차 오전 6시에 주삿바늘을 제거했는데, 그 모습을 보는 내 속이 다 시원했다. 아내는 오죽했을까.




이렇듯 제왕절개 후 몸이 회복되는 과정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정말 많은 고통이 따르는데, 시간이 지나길 바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껏해야 진통제에 의지하는 것 정도다.


첫째 출산 때, 예기치 않게 제왕절개 출산을 해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던 아내에게, 누군가 이렇게 얘기했단다. "자연분만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정확히 무슨 의도로 얘기했는지 알 수 없으나 수술 직후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한테 할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출산 축하한다는 말은 못 할 망정.


또다시 그런 얘기를 듣게 된다면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제왕절개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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